인문학, ‘너 자신을 알라’ 에서 출발
본래 인문학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폴로 신의 경고에서 유래한다. 이같은 신의 경고에 인간들 중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사람은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일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반박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핵심 단어인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자신에 대한 지식(self-knowledge)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인간은 신과의 대비를 통해서 발견된다. 인간에 대한 자기 지식이 없어서 파멸한 이도 있다.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는 누구도 풀지 못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명석했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이상의 진술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발견과 관련해 그 탐구의 돌파구를 열어 준 것은 사실 인간이 아니라 아폴로 신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이것이 아마도 그리스 인문학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리스인들과 달리 로마인의 중심에는 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예컨대 키케로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고와 관련해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며 그의 최대 화두는 “인간답게 사는 것과 그 방법”이었다. ‘아르키아스 변호’가 바로 그 전거(典據)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목적(quae ad humanitatem pertinent)에 봉사하는 모든 학문들은 서로가 서로를 묶는 공통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마치 혈연에 의해 연결된 것인양 상호 결속되어 있다.”
놀랍게도 키케로는 학문들이 섬겨야 할 주군(主君)의 자리에 진리(veritas)가 아니라 ‘사람됨’(humanitas)을 놓고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인간이 중심에 서있는 인문학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이 신들의 세계를 무시하는, 그러니까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들 역시 인간 내면의 저 양심의 세계(religio)에서 얼마든지 인간을 조정하고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인문학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서양의 인문학(humanitas)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최소 120년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당시 조선어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조선어 사정을 잘 알려주는 ‘라한소자전’은 ‘humanitas’를 ‘인셩’ ‘량선’ ‘례모’등으로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1936년 작업에 착수해 1959년 1월29일 경향신문사에서 출판한 윤을수 신부(1907~71)의 ‘라한사전’에는 ‘studia humanitatis’라는 별도 표제와 함께 ‘인문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
그런데 이 표현이 일본인 학자 다나카가 편찬한 ‘라화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인문학’이라는 번역어를 누가 만들었는지가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문헌자료 추적의 어려움으로 이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지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윤을수 신부의 고유 번역일지도 모르겠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육당 최남선도 인문학에 해당하는 영어 ‘fine art’를 ‘美術(미술)’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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