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한 편 산문 한 편 ❿

박상봉 기자

등록 2025-09-04 05:04


| 시 | 


비파나무


박상봉


비파나무 열매 단단한 껍질 속

술대* 튕겨 내는 소리 듣고 나서, 비로소

달콤하고 시린 인생의 참맛 알게 되었네


초승달이 만드는,

귓전에 윙윙 울리는 소리


부드럽고 결 곧은 늘푸른큰키나무 소리 듣기 전에는

손톱이 소리가 되고 나무가 음악이라는 것

나무와 잎사귀의 문맥이 흙으로 빚은 소리인 것을

알지 못하였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서늘한 바람 소리가

모두 게송인 것을


마음 머무는 곳이

음악인 것을 알지 못하고

악기만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것이네


ㅡ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 88쪽

*술대(匙) : 거문고와 향비파를 연주할 때 사용하는 막대기.


‘술’이나 ‘시’라고도 하며, 볼펜 크기의 막대로 거문고나 향비파를 연주할 때 오른손에 끼워서 줄을 퉁기는 막대이다.

재료는 주로 바닷가에서 나는 검은색의 단단한 해죽(海竹)을 사용해서 만들며, 화리(華梨)를 붓대 모양으로 만들어 둥글게 다듬어 만들기도 하였다. 또 자문죽(紫紋竹)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히 향비파용 술대는 철남목(鐵枏木)으로 만든다.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술대를 휘어잡는 동시에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버티어 쥐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약간 구부려 쥔 뒤 술대로 현을 내리치거나 올려 뜯는다.  


| 산문 |


 시,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


오랜 기억을 들춰보면 무성한 숲이 보였던 것도 같은데 시를 좇다 보니 언덕이 나왔다. 오르는 길이 무척 힘들었다. 시 때문에 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 다니던 대학을 버리고 직장도 걸핏하면 팽개쳐 버렸다. 곁에 머물던 여자도 어느날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졌다. 


굴곡진 삶을 살아야 했던 그 힘든 언덕을 거의 다 넘어왔는데 눈 떠 보니 카타콤(Catacomb)까지 왔다. 목이 마른데 샘은 없고 눈 앞에 메마른 나무 한 그루 딸랑 서 있다. 그게 시라는 나무다. 나는 그 나무에 나이프로 글씨를 새겼다. 


 “시,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 


나무에 목 매달고 쓴 시편들을 두 번째 시집『불탄 나무의 속삭임』으로 묶어냈다. 세상으로 난 숱한 갈래 길 헤매고 다니다가 허방 짚고 돌아와 보니 다시 제자리. 내가 찾던 것은 원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던 것이다.

|박상봉 시인 약력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과 함께 동인지 『국시』 동인으로 문단활동 시작. 시집 『카페 물땡땡』(2007), 『불탄 나무의 속삭임』(2021), 『물속에 두고 온 귀』(2023) 출간. 근현대 문학·예술 연구서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공저(2021). 고교시절부터 백일장·현상공모 다수 당선. 1990년 현암사 『오늘의 시』 선정,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북카페·문화공간 ‘시인다방’ 운영, 시·IT융합 문화기획, 중소기업 성장 컨설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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