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향연
요즘 대학가에서는 각종 논문 발표 행사가 유례없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교수들은 발표할 논문 쓰기에 바빠서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고 학생 교육은 뒷전인 경우도 많다. 대학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개인의 역량을 논문의 수로 가늠하게 된 데 따른 결과다.
대학의 학술행사를 통상 ‘심포지엄’이라 부른다. 이 말은 인문학 분야의 토론회를 일컫는 데 특히 자주 사용되며 ‘향연’이라는 뜻이다. 인문학 행사를 ‘향연’이라 부르는 관행은 플라톤의 대화록 <심포지엄>에서 유래한다. 이 대화록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와서 사랑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말하면서 가장 고귀한 사랑의 형태는 진리와 지혜의 추구, 곧 철학임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의 학술행사를 ‘심포지엄’이라 부르는 데에는 대학이 이처럼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곳임을 내세우려는 심리가 은근히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오늘 대학에서 벌어지는 진리 추구를 ‘심포지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플라톤의 <심포지엄>은 사랑에 대한 토론을 말 그대로 향연 속에서 진행시킨다. 물론 여기서도 토론은 누가 가장 올바른 말을 하느냐는 경쟁의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경쟁의 밑바닥에는 기본적으로 포도주 잔이 오가는 친교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 반면에 오늘 대학의 학술대회는 아무리 화기애애하게 이루어지더라도 누가 더 많은 논문을 쓰는지 따져야 하는 계산심리를 전제로 한다.
인문학자로서 자신의 학문행위를 향연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향연은 잔치이고, 잔치는 노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논다는 것의 가치를 잊고 말았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랫말이 퇴폐의 징표가 된 지도 오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잘 놀 필요가 있고 잘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인문학은 잘 노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잘 놀려면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조선조의 유학자가 경서를 읽고 ‘시서화’ 즉 글 짓고 쓰기, 사군자 치기에 능통한 것을 중시한 것은 생각해보면 멋있게 노는 법을 배워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철학과 역사,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 삶의 목적을 알고 사람들과 만났을 때 최고 수준의 잔치를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각종 향연이 지닌 역사적 한계를 외면해서도 곤란하다. 플라톤이 그려낸 세계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남성들밖에는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향연 예찬은 지독히 남성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조의 선비상 역시 당대 여성은 구현하기 어려운 물적 기반을 전제로 한다. <열하일기>를 지은 연암 박지원은 글 솜씨 못지 않게 가야금 솜씨도 뛰어났다고 하지만 그가 그런 소양을 펼쳤던 곳이 혹여 주로 기생방이었다면 그런 모습을 오늘날 바람직하다고만 하긴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동서양 향연은 노동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봉쇄돼 있었다.
인문학이 이제 향연으로 거듭나려면 공적인 기반을 갖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기반은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것으로서, 놀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돈이 없어서, 여성이어서, 혹은 다른 소수자여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그리고 일만 하지 않고 놀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인문학의 향연이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향연이 되려면 인문학도 대학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거리로, 광장으로, 시민들 곁으로 나아가야 한다. 논문 쓰느라 바쁜 대학 내 인문학자들도 자신의 몫이 여럿이 같이 잘 노는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최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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