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자린고비의 노래-작가 한판암-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1-06 12:01


한판암 저

면수 352쪽 | 사이즈 152*225| ISBN 979-11-5634-650-0 | 03810

| 값 18,000원 | 2025년 09월 30일 출간 | 문학 | 수필 |





책 소개

 

 

 

한판암 수필가의 스물두 번째 수필집 『자린고비의 노래』는 2022년 중반부터 2023년 중반까지 써 내려간 72편의 기록을 여섯 마당으로 정갈하게 엮는다. ‘노비와 머슴’에서 ‘수의 단위를 되새겨 봄’까지, 표제만으로도 삶과 역사, 언어와 사유를 통과하는 시선이 또렷하다. 학문으로는 전공서를 서른 권 가까이 펴냈고, 글쓰기는 “생활의 일부이자 정신의 향도”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자신의 일상과 한국사의 자락을 나란히 놓고 천천히 되새김한다. 수필집 제목은 자조와 진담이 섞인 「앞뒤 꽉 막힌 자린고비」에서 건너온다. 아끼는 삶이 때로는 사랑을 막는 담장이 되기도 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이 수필집이 지닌 미덕의 첫머리다.

두 번째 장 ‘잔인한 사월’은 이 수필집의 심장이 된다. 대형 교통사고, 장 절제, 난소 종양, 담낭 수술, 척추 협착증, 그리고 0기 유방 상피내암까지, 부부가 통과한 병원의 긴 복도를 저자는 숨 고르듯 기록한다. 「아내와 병원」에서 그는 “솥뚜껑에도 놀라는 가슴”으로 아내의 숨을 세고, 「쉬며 돌아가는 지혜」와 「내려놓고 쉬며 차 마시는 지혜」에서는 직진보다 ‘돌아감’, 가속보다 ‘머묾’을 삶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절제는 짠내가 아니라 품위라는 사실, 방하착과 끽다거의 언어로 정리된 노년의 슬기, 그리고 한 잔의 차가 건네는 작은 평안이 페이지마다 스며든다. 검약을 다시 배우고, 사랑을 다시 배우는 수필집—읽는 내내 마음이 조용히 덥혀진다.

그러나 이 수필집은 사적인 회고록에 머물지 않는다. 「기로소 얘기」를 비롯해 호패·위리안치·신언서판·익선관·세시풍속·계첩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제도와 상징을 현재로 불러와 일상의 언어로 설명한다. 역사와 생활, 도량과 골목, 만년필과 원고지, 좌우명과 난 화분이 한 권 안에서 은근히 뒤섞이며, 독자는 ‘배우는 기쁨’과 ‘사는 지혜’를 동시에 건진다. 금혼을 넘긴 세대에겐 깊은 공감과 위로가 되고, 젊은 세대에겐 품위 있게 늙는 법에 대한 단서를 건네는 수필집이다. 한 문장씩 천천히, 마치 차 한 잔을 식히는 속도로 읽을 때 비로소 보이는 빛이 있다—검박하지만 넉넉하고,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 그런 빛이다.

 

자료 영상

https://youtu.be/Lkeix-zHTSU?si=3OHbtn0SLQiQThv8


 

 

 

저자소개

 

• 현재 경남대학교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명예교수(경영학박사) 

• 경남신문 객원논설위원ㆍ경남IT포럼회장 

• 한국정보과학회 영남지부장ㆍ이사ㆍ부회장 

• 한국정보처리학회 영남지부장ㆍ이사ㆍ감사ㆍ부회장 

• 한마 대상(학술상), 산학기술교육 대상(학술상) 

• (株)CENO Tec 감사(강소기업) 

• 한맥문학(2003)ㆍ문학저널(2004)을 통해 등단 

• 문예감성ㆍ시와늪ㆍ출판과 문학ㆍ호주한국문학 신인상 심사위원 

• 시와늪 아카데미, 수필교실 지도교수 

• 한국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회원 

•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현대작가 수필분과위원장

 

•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

 

• 수필집 : 찬밥과 더운밥, 엠아이지(MIG)(2005) 

           내가 사는 이유, ESSAY(2006) 

           우연, 해드림출판사(2009) 

           마음의 여울, 해드림출판사(2011) 

           월영지의 숨결, 해드림출판사(2011) 

           행복으로 초대, 해드림출판사(2012) 

           절기와 습속 들춰보기, 해드림출판사(2013) 

           8년의 숨 가쁜 동행, 해드림출판사(2014), (2014 세종 도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해드림출판사(2014) 

           가고파의 고향 마산, 해드림출판사(2015) 

           은발 할아버지의 손주 양육기, 해드림출판사(2017) 

           초딩 손주와 우당탕탕, 해드림출판사(2017) 

           반거충이의 말밭산책, 해드림출판사(2019), (2019 문학나눔 도서) 

           파랑새가 머문 자국, 해드림출판사(2020) 

           황혼의 뜨락 풍경, 해드림출판사(2021) 

           그래도 걸어야 한다, 해드림출판사(2022)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해드림출판사(2023)(신곡문학상 대상 수상) 

           여든의 문턱, 해드림출판사(2024) 

           수필로 읽는 고사성어, 해드림출판사(2025) 

           수필로 만나는 고사성어, 수필과비평사(2025) 

           자린고비의 노래, 해드림출판사(2025)

 

• 칼럼집 : 흔적과 여백, 해드림출판사(2011)

 


 

차례

 

 

들어가는 글 │스물두 번째 나의 민낯과 마주하며 04

 

Ⅰ. 노비와 머슴

기로소 얘기 16

호패는 서러운 신분의 상징 20

부관참시 25

구휼미 얘기 29

등용의 필요 충족조건 신언서판 34

칠보시에 얽힌 일화 39

최악의 귀양살이 위리안치 44

섣달그믐의 세시풍속 49

익선관에 담긴 의미 55

노비와 머슴 58

무덤에 대한 생각 64

출필곡반필면을 짚어봄 69

 

Ⅱ. 잔인한 사월

무해 무덕(無德)한 임인년을 꿈꿨는데 76

일은 꼬이고 소식은 답답했던 하루 81

고구마의 재발견 85

또 이가 빠졌다 90

임플란트 후유증 93

불우 이웃 돕기도 아닌데 97

정초부터 아홉수의 액땜일까? 101

아내와 병원 105

잔인한 사월 110

아내의 방사선 치료 114

폭풍우 몰아치듯이 119

코로나19의 왕림 123

 

Ⅲ. 되로 주고 말로 돌려받다

차례를 모시고 심란한 마음에 130

내 길을 걸으며 135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는 걸까 140

가을걷이 전인데 144

거짓말과 만우절 148

되로 주고 말로 돌려받다* 152

귀신에 홀렸던가 156

자리끼 161

앞뒤 꽉 막힌 자린고비 165

한 세대의 막을 내리다 169

어버이에 대한 때늦은 후회 173

정화수와 치성 178

 

Ⅳ. 말과 글의 되새김

중복과 말복 사이 186

고정관념 깨기 190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195

목화를 되새김 200

죽림쉼터에서 말부조 206

뇌물 이야기 210

말과 글의 되새김 215

계묘년은 쌍춘년 219

재개된 수필교실 223

돼지로 보였다가 부처로 보였다가 227

쉬며 돌아가는 지혜 231

코이의 법칙 236

 

Ⅴ. 배달 의뢰인 미상의 난 화분

태권도 4품의 손주 242

표음문자 세대와 표의문자 246

L 박사와 H 박사 251

턱도 없었던 단견 256

배달 의뢰인 미상의 난 화분 260

엄동의 초입에서 265

만천홍 화분의 선물 270

멀쩡한 산등성이 평탄한 길에서 낙상 274

좌우명 이야기 279

만년필과 원고지 283

내려놓고 쉬며 차 마시는 지혜 288

스무 해를 훌쩍 넘긴 등산 293

 

Ⅵ. 수의 단위를 되새겨 봄

교수의 전제조건 300

무보수 강제성의 부역 304

욕을 들여다 봄 308

셋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313

수의 단위를 되새겨봄 317

또다시 겁외사와 만남 322

덕담이 담긴 옛 그림 읽기 327

동양화의 다양한 소재 이야기 333

천재일우 이야기 339

계묘년 원단의 단상 342

망초와 개망초 347

 

 

출판사 서평

 

 

덜어내며 다시 걷는 노래

 

이 수필집은 저녁빛으로 물든 일상의 연대기이자, 오래된 말과 오늘의 숨이 한 자리에 앉아 차 한 잔을 나누는 기록이다. ‘기로소’에서 ‘호패’와 ‘위리안치’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제도의 맥락을 헤아리는 눈길이 먼저 길을 열고, 곧바로 병실의 창과 진단서의 활자, 낙상과 통증, 카드 명세서 한 장 앞에서 멈칫하는 생활의 체온이 뒤따른다. 학자적 습속으로 정확한 용어를 달아주고(때로는 한자와 각주로 문턱을 낮추며), 노년의 체험으로 문장을 덧살붙이는 이 두 겹의 호흡은, 아는 것을 잘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고전적 물음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린고비’는 인물이라기보다 태도임을 알게 된다. 불요불급을 덜어내려는 검소함이 때로는 사랑을 가로막을 수 있음을, 그래서 아내의 손가방 하나에도 마음을 배워야 함을, 치레가 없는 문장으로 반성하고 웃는다. 그 웃음은 자조에서 끝나지 않고 생활의 지혜로 번역된다. 급히 달리기보다 “쉬며 돌아가는” 길, 힘이 부치면 잠시 멈추어 “끽다거(喫茶去)”로 숨을 고르는 법, 온몸을 채우던 집착을 한 올씩 내리는 “방하착(放下着)”—수행의 어휘가 과장이 아니라 생활의 근육이 되어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 병력의 타임라인도, 옛 제도의 출전도, 결국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덜어내고, 돌아보고, 다시 시작하는 일.

 

이 수필집의 문체는 딱 부러진 설명과 미세한 체감이 맞물린다. 연원과 사례는 또렷하게, 경험의 보고는 담담하게. 수술대와 등산로, 탑본과 주련, 백송의 가지와 카드 고지서가 한 페이지 안에서 어깨를 붙인다. 문장은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랬다”로 닫지 않고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덜고 무엇을 건너갈 것인가”로 독자에게 반문한다. 그래서 이 수필집은 ‘한판암의 삶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오늘 사용설명서’다. 역사적 앎은 현실을 비추는 손전등으로, 사적인 서사는 누구에게나 닿는 거울로 바뀐다.

 

『자린고비의 노래』는 노년의 실상을 숨김없이 드러내되, 그 실상을 체념으로 밀지 않는 수필집이다. 황혼의 그림자를 고백하면서도 그 위에 깔릴 달빛의 길을 더듬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문장처럼, 할 수 있는 일과 내려놓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명징함—그 명징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유머와 겸허, 타이밍과 어휘가 단정히 배치되어 있다. 독자는 읽는 동안 몇 개의 옛 말과 몇 가지 생활의 기술을 배우고, 수필집을 덮는 순간엔 자신만의 ‘되새김’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 노래는 검소함의 찬가가 아니라, 덜어냄을 통해 넉넉함으로 건너가는 사려 깊은 합창이다.

수필 몇 편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작품 1: 기로소 얘기

 

이 수필은 ‘기로소’를 단순한 제도 소개로 넘기지 않고, 노년의 위상과 예우라는 주제를 현재적 관점으로 소환하는 작품이다. 기사‧전함재추소‧치사기로소로 이어지는 명칭 변천과 입소 자격의 강화 과정이 서술을 지적 골격으로 지탱하고, 왕들의 연령·입소 사례가 제도의 상징 자본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기로소는 권력의 변방이 아니라, 권위와 명예, 국가 의례의 교차지점으로 자리매김된다.

‘사진이 없던 시절의 기록 장치’로서 계첩을 호출하는 대목이 특징적이다. ⟪기사계첩⟫을 현대의 기념 사진첩에 빗대는 비유가 역사와 일상의 거리를 좁히고, 전란으로 소실된 자료와 살아남은 기록의 대조가 ‘유지와 상실’이라는 시간의 드라마를 만든다. 이는 노년의 기억 보존이라는 수필집 전체 정서와도 은근히 맞닿는다.

저자는 결말에서 기로소를 ‘원로원’과 ‘명예의 전당’ 사이의 묘한 제도로 읽어내며 오늘의 노인복지와 품격 있는 예우를 소망하는 정서로 나아간다. 지식 전달로 시작해 생활적 욕구로 수렴하는 구조가 한판암 특유의 문장 리듬을 만든다. 과거의 제도가 현재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 되며, 독자에게 ‘우리의 노년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 2: 아내와 병원

 

이 수필은 개인사적 재난의 연대기를 통해 ‘동행의 윤리’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1982년 교통사고, 1986년 장 수술, 1987년 난소 수술, 2020년 담낭 수술, 2021년 이후의 만성 통증, 그리고 유방 상피내암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이 사건의 비극성보다 ‘버틴 시간’의 밀도를 부각한다. 화자는 진단명과 절차를 차분히 적시함으로써 과장이 아닌 사실의 무게로 감정을 전달한다.

병원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보 탐색과 신뢰 형성이 묘사된다. ‘로봇수술의 경험이 많은 전문의’라는 근거가 불안을 합리로 다스리는 장치가 되고, 성급한 결정의 위험과 재확인의 필요가 동시에 부각된다. 이는 이 수필집 전반에 흐르는 태도—두려움 속에서도 판단 근거를 세워 나가는 생활적 합리성—을 대표한다.

저자는 자기책망과 기원의 언어를 교차시키며 책임과 한계를 동시에 인정한다. ‘부덕한 나’라는 표현과 ‘은총’에 대한 바람이 동일 문단에 공존하고, 이는 체념이 아니라 겸허로 수렴된다. 아픔의 나열이 결국 ‘황혼을 곱고 단아하게 누리’려는 소망으로 닫히며, 고통의 서사가 사랑과 연대의 서사로 전환된다.

 

 

작품 3: 앞뒤 꽉 막힌 자린고비

 

‘검소’와 ‘구두쇠’의 경계를 일상적 사건—손가방 구매—으로 섬세하게 가르는 것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카드 명세서라는 사소한 단서가 관계의 균열과 자존의 문제를 소환하고, 화자는 자신의 통제 성향이 상대의 자유를 위축시켰음을 직면한다. 경제관념의 미덕이 소통의 장애로 전도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 핵심이다.

저자의 자기풍자가 방어가 아닌 성찰로 작동한다. ‘짝퉁’ 농담을 던지고, 끝내는 대금 지불을 자청하는 장면이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권력 재배분’의 제스처가 된다. 금액보다 ‘허용과 신뢰’가 중요함을 깨닫는 과정이 관계 회복의 서사로 기능한다.

‘불요불급의 절제’와 ‘필요의 지출’ 사이의 균형 윤리를 제시한다. 가족의 치료와 필수 지출에는 아낌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과, 사소한 소비에도 설명을 요구하게 된 습속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다짐이 드러난다. 검소의 미덕이 사랑의 언어가 되려면 상대의 자율을 보장해야 한다는 통찰로 수필이 선다.

 

 

작품 4: 쉬며 돌아가는 지혜

 

이 작품은 청년기의 ‘직진 습관’을 노년기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공과금 즉시 납부, 우편물 당일 발송 같은 ‘즉결’의 습관이 효율처럼 보이나, 여유와 숙고를 결핍시키는 심리적 강박이었음을 고백한다. 성격사와 시대정신(생존의 조급함)이 맞물리며 선택의 편향이 설명된다.

등산 교육의 장면이 삶의 은유로 배치된다. ‘멀리 가려면 뛰지 말라’는 통찰이 손주에게 전해지고, 이는 곧 ‘쉬고 돌아가는’ 전략으로 확장된다. 전공 전환의 사례 역시 ‘우회가 실패가 아니듯, 우회가 오히려 진로를 연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느림의 윤리’를 실천 과제로 제안한다. 체력의 감소가 지혜의 증가로 전환되고, 직진 대신 우회, 속도 대신 지속이 덕목으로 자리한다. 절망의 밤 뒤에 여명이 오듯, 한발 물러섬이 해법의 전제임을 확인하며, 나이 듦의 값어치를 ‘판단의 깊이’로 정의한다.

 

 

작품 5: 내려놓고 쉬며 차 마시는 지혜

 

이 수필에서는 세 가지 선어(착득거‧휴헐거‧끽다거)를 삶의 기술로 번역한다. 모든 것을 지고 가려는 ‘착득거’가 왜 재앙이 되는지 짐의 비유로 설명하고, 과적의 위험을 구체적 사고 이미지로 환기한다. 덜어내기와 멈춤이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길’의 정의를 확장하여 생의 불가역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논한다. 도로의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삶에는 완벽한 대비가 없다는 명제가 제시되고, 그 빈틈을 메우는 장치로 ‘휴헐거’와 ‘끽다거’가 들어선다. 장치의 효용은 감상적 위안이 아니라 에너지 관리와 판단 재정렬이라는 현실적 기능에 있다.

방하착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대목이 글의 진정성을 높인다. 버림은 구호가 아니라 훈련이라는 전제가 놓이고, ‘넘어진 김에 쉬어 가라’는 속담이 전략으로 재해석된다. 결말의 물음—언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이 독자에게 넘어오며, 실천적 성찰을 촉발한다.

 

 

작품 6: 또다시 겁외사와 만남

 

공간 기행을 통해 사유의 지도를 그리는 작품이다. 겁외사의 소박한 배치(벽해루–대웅전–사리탑–율은고거)와 백송‧황금송 같은 디테일이 시각적 질감을 만들고, ‘생가 위 중심–사찰은 변두리’라는 배치 인식이 성철의 생전과 법맥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장소의 규모가 아니라 상징의 밀도가 핵심이 됨을 보여준다.

법어와 오도송·열반송 인용이 방문기를 사상 기행으로 확장한다. ‘산은 산, 물은 물’의 직설과 ‘홍하천벽해’의 거대 이미지가 공존하고, 화자는 ‘문턱을 넘어도 변한 것이 없다’라고 고백한다. 이는 종교적 체험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이며, 깨달음을 흉내 내지 않고 ‘못 미침’을 성실히 기록하는 윤리이다.

끝의 삐딱한 자문—‘생가터에 절 한 채가 전세로 든 듯’—이 오히려 이 장소의 진의를 비춘다. 형식과 체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수행과 어록이 공간을 성소로 만든다는 역전의 논리가 암시된다. 결국, 글은 기념의 외형보다 ‘돌아봄’의 실질을 중시하는 태도에 닻을 내리고, 독자에게 자신만의 ‘겸허한 문턱’을 묻는다.

 

 

따라서,

 

한판암 수필집 [자린고비의 노래]는 제도사와 생활사가 맞물려 노년의 하루를 지적 성실과 정서적 품위로 복원하는 기록이 된다. 기로소와 계첩의 이야기에서 배운 ‘존중의 형식’이 병실과 카드 명세서 앞의 ‘돌봄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검소와 집착의 경계를 가르는 자책과 유머가 관계를 치유하는 언어가 된다. 멈춤과 우회의 지혜(휴헐거), 덜어냄의 결기(방하착), 한 잔의 여유(끽다거)가 산문의 곳곳에 실사용 공구처럼 배치되어, 아는 것과 사는 것이 서로를 견인하도록 만든다. 이 책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현재를 훈계하지 않으며, 다만 사실의 밀도와 말의 책임으로 독자의 오늘을 비춰줄 것이다.

 

이 노래는 ‘검소함의 찬가’가 아니라 ‘덜어냄을 통해 넉넉함으로 건너가는 방법론’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쉬고, 돌아보고, 내려놓으며, 필요할 때는 근거를 찾아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운다. 그 배움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한 번 멈추기, 한 가지 덜기, 한 줄 더 적기, 한 사람 더 살피기로 완성된다. 책을 덮는 순간, 독자는 자기 삶의 문턱에서 이렇게 답하게 된다. 오래 사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문 일부

 

정처 없이 유랑하는 멋쟁이로서 무애도사인 구름 얘기다. 자고로 구름은 생성과 소멸을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한다는 맥락에서 무한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런 신비로움을 영생이라고 인식했을 뿐 아니라 산천의 기운이나 문물의 생기라는 뜻으로 여겼다. 그런 까닭일까. 단순한 구름이라고 여기지 않고 상서로운 구름이라 하여 서운(瑞雲)은 ‘좋은 일을 기원한다.’라고 여겼다. 이처럼 불가사 의한 존재라고 여겨 십장생도(十長生圖)의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

 

매화나무 매(梅)와 눈썹을 뜻하는 눈썹 미(眉)의 독음(讀音)이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매화(梅花)는 ‘눈썹이 하얗게 세도록 부귀를 누린다.’는 뜻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매화와 달을 한 폭의 그림으로 함께 그리면 백미(白眉)가 되도록 즐거움을 누린다.’는 미수 (眉壽)가 된다. 그런가 하면 혹독한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는 이유 에서 ‘어떤 난관도 이겨내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의미라고도 인식했다. 선조들은 이런 매화의 특성을 꿰뚫어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을 팔지 않는다.”는 뜻으로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이라 이르고 화괴(花魁)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대나무 그림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했다. 또한, 강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견뎌낸다는 의미에서 역경과 고난도 이겨내고 일어선다는 강인함의 의미를 함축한다고도 여겼다. 한편 언제나 푸르름을 잃지 않는 기개를 ‘의지나 계획을 반드시 관철 시킨다.’ 혹은 ‘어떤 난관이나 역경에서도 뜻이 변함없다.’는 의미의 관점에서 일편단심・지조라고도 해석해 왔다.

 

그 옛날 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주는 봉급을 녹봉(祿俸)이라고 했다. 따라서 녹봉은 벼슬자리에 올랐다는 징표이다. 한편 사슴을 나타내는 ‘사슴 록(鹿)’은 ‘복 록(祿)’과 음이 같다는 이유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했었다. 이런 이유에서 사슴 그림은 록(祿)을 받는 사람 즉 벼슬길로 나가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게다가 사슴뿔은 매년 돋아났다가 빠진다는 관점에서 장수・재생・영생의 존재로 여겨 신성시했다. 또한, 큰 눈과 온순한 성품은 세속을 초월해 때 묻지 않은 영혼이 순수한 선비를 닮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천도(天桃)는 이름 때문인지 하늘에서 자란다는 전설이 있으며 벽도(碧桃) 혹은 승도(僧桃)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벽도는 초록색이 변색하지 않은 채로 익는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승도가 함축하는 의미는 ‘천도의 털이 없는 것을 스님들의 깎은 머리에 빗대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한편 잘 익은 천도는 득도한 후에 신선이 먹는다고 하여 선도(仙桃)라고 호칭되며 장수를 의미한다. 그 옛날 중국 고사에서 한무제(漢武帝)에게 바쳐진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를 동방삭(東方朔)이 30개 중에서 3개를 훔쳐 먹고 3천 갑자(甲子 : 60년×3000=180,000년)를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천도 중에는 다 익었을 때까지 초록색을 유지한다는 맥락에서 젊음을 뜻하기도 한다는 귀띔이다. 한편 복숭아를 여러 개 그리면 다수도(多壽圖)이고, 복숭아를 내미는 그림은 공수도(供壽圖)가 된다.

 

밤(栗)과 대추(棗) 얘기이다. 흔히들 대추는 아들을, 밤은 딸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대추나무 조(棗)’와 같은 소리로 읽는 ‘새벽 조(早)’로 바꾸고, ‘밤나무 율(栗)’자가 중국어로 발음할 때 ‘설 립(立)’과 같다는 데서 ‘설 립(立)’을 취하여 ‘조립자(早立子)’를 만들면 ‘아이를 일찍 낳아라.’는 뜻이 된단다. 그 옛날 대(代)를 잇는 것은 무엇보다 중시하던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절 혼인하여 빨리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런 풍습에서 혼인하는 날 시부 모들이 새댁 차마 폭에 대추와 밤을 던져 주었다는 전언이다.

_본문 ‘동양화의 다양한 소재 이야기’ 중에서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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