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헝가리 노벨문학상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장편소설 『헤르쉬트 07769』 국내 출간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1-22 14:28

노벨문학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장편소설 『헤르쉬트 07769』가 지난 16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중부유럽 문학의 가장 급진적인 실험가로 평가받아온 그의 문학 세계가 집약된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강한 도전이 될 책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장편소설 『헤르쉬트 07769』


『헤르쉬트 07769』의 무대는 독일 튀링겐주의 가상 마을 카나(우편번호 07769). 주인공 플로리안 헤르쉬트는 청소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하고 순박한 인물이다. ‘지배하다’를 뜻하는 이름과 달리 그는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물리학 수업에서 접한 우주의 붕괴 이론을 계기로 세계가 이미 끝났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후 그는 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편지를 쓰고, 사고는 점점 집요한 미로로 침잠해 간다.


이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600쪽이 넘는 분량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쉼표와 종속절로만 이어지는 문장은 독자에게 숨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출 수 없는 현대 세계의 리듬과 통제 불가능한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다. 독자는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한 인간의 의식 속에서 세계가 무너져 가는 과정을 직접 견디게 된다.


작품 속에서 종말은 폭력적 사건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늦었다는 인식”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헤르쉬트는 광기에 빠진 인물이기보다, 지나치게 논리적인 사고 끝에 현실과 단절된 존재다. 이 소설은 묻는다. 세계가 정상이라면, 그 끝을 감지한 사람은 반드시 이상자가 되는가.

바흐의 음악은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수학적 질서와 신적 조화를 상징하는 바흐는, 세계를 구원하는 희망이기보다는 인류가 끝내 놓지 못하는 질서에 대한 마지막 신념으로 기능한다. 그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소설의 냉혹한 인식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은 일관되게 “인간은 언제나 사태를 이해하기에 늦게 도착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 『전쟁과 전쟁』을 거쳐 『헤르쉬트 07769』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물들은 행동하기보다 사유 속에서 침식된다.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끝없이 합리적인 사고이며, 설명하려는 욕망 그 자체가 붕괴의 원인이 된다.


노벨위원회가 그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흔드는 작가다. 『헤르쉬트 07769』는 종말을 인식한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사고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며 이 소설에는 명확한 결말이 없다.

다만 세계가 무너진다기보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끝없이 미끄러진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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