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사하라에 지다 파리 -디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일곱째 날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5-11-07 14:59

사하라의 별

지옥의 랠리 일곱째 날

맑고 모래바람

타마라셋Tamanrasset- -알리트Arlit. 705km. 총 주파 4,541km.



먼지 속 질주


2시간 수면, 선 채... 코펠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게 네덜란드 TV 팀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날 가로막았다. 사람 꼴이 아닌 내 모양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여보쇼! 원숭이들한테 보여주는TV 프로그램 만드는 거요? 내가 세수한 날 인터뷰 약속하겠소."

도망가는 나를 쫓아오며 그들은 기어이 인터뷰를 해 갔다. 미치광이한 테 뺨 맞은 기분이다.

8시 5분, 와디의 홍수로 무너져 끊겨버린 2개의 피스트 앞에서 하마터면 경주를 쉽게 끝낼 뻔했다. 많은 주자들이 접선 구간에서 아깝게 탈락하곤 하는데, 마음의 긴장이 풀려있는 탓이리라.

오늘 접선 구간 57km 중 두 번째 크레바스 속에 입방아를 찧어 20분이나 허비하는 바람에 남은 8분 동안을 스페셜 구간처럼 미끄러지고 튀며 달려야 했다.


마른 강 바닥(와디)을 달리는 100번 주자.


67km. 오래된 보루 옆, 싸리나무로 둘러쳐진 집 3채로 형성된 마을 타가우오. 앞으로 90km 더 가면 알제리 국경을 넘어 니제르로 들어가게 된다.

69.40km, 와디 몇 개를 건너 340°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다시 나침반 방향 248°로 좌회전. 80km 이상을 와디의 마른 바닥을 따라 내려갔다. 마른 강바닥은 부드러운 흙모래여서 먼저 출발한 차들의 먼지가 제트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오르고 있다. 이 먼지 속 시계 15m도 안 되는 곳에서 앞차를 추월해 내려면 고도의 운전 기술보다는 죽음의 용기가 필요 하다.

가끔 우리 차를 능숙하게 따돌리는 주자들의 용기도 용기거니와 뒤로 쳐지게 되는 우리는 순간 시계 제로의 먼지에 휩싸여버린다. 물론 급정거 해야 하고 시계가 트이는 만큼씩 다시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는 사이 가속이 붙은 또 다른 뒤차가 추월해 가면 다시 장님이 되는 억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대포라도 있으면 놈을 쏘아 주련만.. 분통 터진다 어렵지 않게 앞지르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넓은 와디 속에 또 작은 와디가 있는데, 가장 최근에 소량의 빗물이 흘러내린 곳은 지면이 비교적 단단하고 먼지가 일지 않는다. 바로 이곳에서 앞지르기 대 전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곳도 사활의 위험이 걸리는 곳이다. 다른 작은 와디와 합류한 흔적에는 반드시 50cm~1m의 층계Marche가 생겨 있어 차가 공중을 날다 꽂혀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와디의 긴 바닥을 이제 막 출발한 경주 차들이 내는 먼지는 최대 시계 30m밖에 되지 않는다. 사막 안경만 내놓고 얼굴과 머리를 터번으로 휘감았으나 먼지를 마시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동안 먼지를 열 숟가락은 더 마셨을 것이다. 유럽 파일럿들은 들이마신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주로 우유를 많이 마신다. 그러나 예전 우리나라 탄광촌 아주머니들이 잘 만들었던 돼지 삼겹살보다 나을까? 거기다 소주 한 잔까지 곁들이면.. 아, 먼지 그득한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인다.

144.58km. 로드 북에 있는 지형이 실제로 나타나지 않아 길을 잃어버렸다. 10km 이상의 넓은 와디 골짜기에 속절없이 갇힌 꼴이 되었다. 골짜기를 더듬다 넓은 공지로 나올 때면 여러 대의 차가 제멋대로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다.

144.85km 지점. 와디 구렁에는 방향 감각을 잃은 땅 개미 떼들의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우리가 가는 방향과 거꾸로 지나쳐 가는 차가 있는가 하면, 한 대의 차가 자기 방향을 잡아 자신 있는 속력으로 달아나면 여러 대의 차가 급히 그 차를 뒤쫓고.. 그리곤 한참 후 몰려갔던 골짜기를 되돌아 나온다. 헛웃음 나오는 모습들이다, 모두들 혼자 방향을 찾아 달아 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건만 혼자 조난 당하는 게 싫어 몰려다니는 수 밖에 없다. 그럴수록 방향감과 거리감은 사라져 버린다. 

길을 잃은 주자


나중에 안 일이지만 차 한 대가 리비아 국경까지 넘어가 버린 불운한 일(그 장본인은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아들로, 리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국은 신속히 공군기를 띄워 그의 수색에 나섰다. 다행히 그는 리비아국경 수비대에 발각되기 전 국경 근처에서 영국 공군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 생겼고, 이날 37대의 차가 만 24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아깝지만 나는 제롬에게 20km 이상을 되돌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폭이 수 km나 되는 와디에서 방향을 잡아 거슬러 오르는 것도 문제다. 나는 멀리 있는 지형지물에 기준을 잡아 제2 거리 계기로 거리 추산과 감산을 작동 시키고, 주 나침반 방향을 고정시킨 다음 비상 나침반으로 임시 방향과 거리 계산을 했다. 시간 손해를 많이 보더라도 확실한 지형지물까지 되 돌아가는 데는 과감해야 한다.


신기루

"이 엉터리..저 멍청이들과 쏘다니는 기차놀이를 언제까지 하려고 해? 기름도 180L밖에 없어, 이 바보야!"

나는 헤매고 있는 차들과 같이 돌아다니려는 제롬을 질책했다. 그는 작년 모리타니아 코스에서 4일 밤 4일 낮을 조난 당해, 벤츠 사륜구동차의 스페어타이어는 물론 본 타이어까지 태우고 차를 그곳에 사장시킨 쓴 경험이 있다. 물론 파리의 모든 가족은 그가 죽은 거로 단정하고 TV 화면에서 연일 울고불고한 희비극이 있었다. 그린 일을 당하고 보니 그는 조난에 대해 자주 과잉 반응을 보인다.

2시간 15분 만에 로드 북 피스트 진입에 성공했다. 죽을 고생을 했다.


162km. 반쯤 모래로 덮인 산과 산 사이를 

몇 개나 비집고 나오니 

죽은 산의 돌무덤이 시작되고 

그 너머 노란 사막이 도도히 펼쳐졌다. 

또 두려워진다. 

시계는 트였지만 

부드러운 모래가 깊어 달리지 못하니 

마음만 지평선 끝으로 달아나고 있다. 

지형지물이 있는 사막 표면은 

짓굿게 불규칙하다.


250.40km. 오후 4시 33분. 

방향130°로 수정 후 제롬에게 핸들을 넘겼다. 오후 내내 이 넓은 모래 밭 위를 제멋대로 방황하는 차들이 많았다. 우리도 또 저 멍청이들의 대열에 끼어들다니.., 이제는 더 이상 지형지물도 없다. 나침반과 거리계기만 붙들어야한다. 


사하라 속의 바다와 섬들... 달리는 차 주위 멀리 나타나는 신기루에 나는 심기가 어지럽다.

나는 처음으로 

눈앞의 사막이 바다로 변해 버리는 

신기루 현상을 보았다. 


전방 수 km 너머는 

푸른색이 도는 은빛 천지다.


불안 속에 계속 방향 130°로 주행. 그러나 길을 잃었을 때는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달릴 수 없다.

391.30km. 방향이 맞았다. 고장 나 수리하고 있는 팀을 만났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220번 주자 페스까롤로의 차로, 차동 장치의 치명적 고장이라 한다.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5시간 이상 페널티를 받을 것이다. 아깝다.

오늘 오후까지 우리에게 낙오 신고(x자 사인)를 해달라는 2대의 차를 보았고, 2대의 오토바이 중 1대는 불타 버렸다. 우리는 몇 쪽밖에 안 먹는 레이션과 비상 식품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구조가 늦어질 때를 대비해 음식과 물만은 넉넉해야 한다.

467.50km. 막막한 사막 계속. 오후 8시 42분. 아직 240km나 남아있다. 두 번이나 길을 잃어버렸고, 그 바람에 4시간이나 허비했기 때문이다. 밤에는 절벽이 겁나 속력은 휠씬 떨어져 버린다. 


수면 부족은 주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복병이다. 아. 실컷 잘 수 있다면..


오늘 밤 잠자기는 글렀다. 내일 아침 다음 구간 출발 시간 전까지만 도착하면 정말 다행이련만... 엇그제부터 내일까지 내내 운전만 하면 80시간 동안 2시간밖에 자지 못한 것이 된다. 혹시 내일도 잘못하여 자정 전까지 도착 못 하면 또 잠을 못 자게 되고, 그때는 이 귀중한 경기를 포기해야 한다. 더 이상 눈 떠 버틸 힘이 없다. 마음이 초조해지고 온몸에 땀이 솟는다. 내일에 달려 있다. 험한 노정이 문제가 아니라 잠이 문제다.

만약 여기서 포기한다면 내년에 내 나라 차와 팀으로 참가하려 한 내 포부는 허사가 되고, 나를 도운 국내외의 멋진 선배 친지들을 무슨 면목으로 마주하라.

497km. 우리는 체력이 쇠잔해지고 무서운 졸음에 시달릴수록 거의 30 분마다 운전석을 바꾸었다. 바람막이 모래산 옆에서 저녁 준비를 했다. 


사막에 내리는 어둠 속,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손을 뻗어 획 저으면 

후드득 떨어질 듯한 그 별 무리들은 

사하라의 비밀스러운 전설을 들려줄 것만 같다.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를 

하늘로 떠올린다. 

스테파니네 집 목동과, 

이렇게 메커니즘 놀음에 젖어있는 나는 

마을이 그립고 

별을 신비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으리라.


사하라의 별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낮은 인간을 성하게 하는 대지가 

넓어 넓어가다 

바람이 불어가는 날 빛 끝으로 

막아 버리는 하늘이 

지평선에서 담을 쌓고 

밤에는 

별을 거느리고 오는 정결한 하늘을 

심술궂은 땅이 

반이나 가려 버리누나.


체크 포인트 출발에 앞서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주자들


작가 최종림 저택에서


❛ 최종림 작가 프로필 ❜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다음주에 계속...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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