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한 ‘정치 언변’이 판치는 이유

리더십은 말보다 모습으로 결정된다. 지도자가 하는 말의 내용도 중요하나, 말을 어떤 자세와 분위기로 하는지 그 모습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더 중요하다. 모습이 좋으면 말이 수반되지 않아도 된다. 다변(多辯)이거나 달변(達辯)인 지도자는 사람들의 이성에 호소한다. 이에 비해 진지·진중·솔직·소탈 등의 덕목을 모습으로 보이는 지도자는 사람들의 감성을 울린다. 그는 말이 적거나 어눌해도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권위를 인정받고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
근래 우리나라 최고위 정치인들은 안타깝게도 이와 상반된 언행을 보인다. 말만 앞세우거나, 말 표현을 부주의하게 하거나, 해선 안 될 말을 해 설화(舌禍)를 빚는 일이 너무 많다. 말에만 신경 쓰다가 멋진 모습을 못 보이거나 모습의 중요성을 아예 잊어버린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장 방문이나 국정 보고 때 불필요한 발언과 남의 말꼬리 잡아 질책하는 태도로 괜히 점수를 깎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 외교 현장에서 중얼거리듯 내뱉어 비속어 논란마저 일으킨 경솔한 말투, 측근들에게 쏟아낸 분노의 막말은 그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정청래와 장동혁, 두 거대 정당의 대표들은 “똘마니”를 비롯한 각종 저속어로 상대편을 비난하고 극단적 과장 어법을 서슴지 않아 저잣거리 패거리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런 정치인들로부터 국민의 마음을 잡는 리더십이 나올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지도자의 말을 절대시했던 과거가 있었다. 고대 아테네 광장에서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수사(rhetoric)와 열정적 웅변(oratory)으로 무장된 페리클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했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19세기 미국 군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정치인의 명연설이 유용했다. 20세기 대중사회에서도 집단적 대중(mass)을 동원하는 데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로널드 레이건과 같은 언변가의 역할이 지대했다. 리더십 연구의 대가인 리처드 뉴스테트는 말로써 남을 설득하는 능력을 민주적 지도자의 으뜸 덕목으로 꼽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21세기 탈(脫)대중사회를 맞아 사회구조가 파편화하고 대중은 원자화하고 사회 변화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치 지도자의 말은 절대적 위력을 잃었다. 어떤 말로도 탈집단주의·탈권위 성향의 국민을 설득해 대규모로 움직이게 하기 힘들어졌다.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치인의 말은 공감의 반향을 일으키긴커녕 반발과 예상치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대에 억지로 말로써 국민 지지를 얻고 권력을 휘두르려 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포퓰리즘이다. 이 유혹에 넘어간 정치인은 중산층이나 기층 민중을 대상으로 반(反)엘리트 감정을 확산시키기 위해 혐오·분노 발언을 난사한다. 피아(彼我) 구분을 명확히 해 저쪽을 악마화하고 이쪽을 흥분시키면서 법·제도 틀을 무시하고 정치인 개인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이 포퓰리즘 전략의 핵심 요소가 말이다.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듣기 원하는, 그러나 국민을 양분해 적대감을 퍼뜨리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그래서 결국 체제를 위기에 몰아넣는 감정적·선동적 말이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무기이다.
이성적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시대에 감정적 언변 포퓰리즘도 피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이 난제를 풀려면 말보단 국민 눈에 비치는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모습으로 권위를 세우고 국민 신뢰를 얻는 길이다. 모습이란 말하는 자세와 분위기를 의미하고, 말이 없어도 상황이나 행동에 드러날 수 있다. 지도자의 말이 국민의 이성이나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데 비해, 지도자의 모습은 국민의 감성을 건드려 감동·공감·신뢰감을 자아낼 수 있다. 근래 학계의 민주주의 담론에서도 정치 무대의 지도자들이 숭고·장엄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는 감흥을 느낌으로써 시민적 자아를 완성하고 대의적 효능감을 기할 수 있다는 이론이 반향을 얻고 있다. 진정한 지도자는 지지층만 바라보는 선동가·책략가·언변가가 아니다. 얕은 말보다 국민 모두를 향해 감성을 울리는 진지·진중·솔직·소탈한 모습의 정치인이 그립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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