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으면,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
문상기의 말처럼, 기다림은 삶을 관통하는 가장 오래된 공부다.
2025년의 마지막 날, 우리는 어김없이 “세월이 참 빠르다”는 인사를 나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체감의 표현이 아니다. 세월의 빠름을 인지한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갔음을 아는 일이며,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묻는 행위다. 다시 말해,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시간의 속도가 느껴진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기 시작할 때 사람은 시간 앞에서 더 이상 무감하지 않다. 무심히 흘려보내던 날들이 더는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인생은 ‘버티는 시간’에서 ‘의미를 축적하는 시간’으로 옮겨간다.
한자 ‘친親’을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설 입(立)’, ‘나무 목(木)’, ‘볼 견(見)’이 합쳐진 글자다. 나무 위에 올라 멀리 바라본다는 뜻으로, 동구 밖 느티나무 가지에 서서 떠난 자식이나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던 옛사람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일까. ‘친’이 들어간 말에는 좀처럼 악한 뜻이 없다. 친절, 친근, 친애, 친밀…. 기다림이 깃든 관계에는 폭력보다 온기가 먼저 스며든다.
기다림은 결코 수동이 아니다. 대상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기다림은 애초에 적극적인 선택이다. 무엇을 기다릴지 정하고, 그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를 가다듬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내는 시간은 기다림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세월은 참 묘하다. 애타게 붙잡으면 더디 가고, 오지 않기를 바랄수록 성큼 다가온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특별한 요령이 없다. 다만 여유와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성급하지 않되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기다림의 본질이다.
올해도 우리는 많은 것을 견뎌냈다. ‘견딘다’는 말은 소극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가장 단단한 삶의 방식이다.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익는다는 것은 시간을 속이지 않는 일이며, 기다림을 건너뛰지 않는 일이다.
연말은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갈무리하는 시간이다. 무엇을 기다렸고, 무엇을 끝내 기다리지 못했는지를 돌아보는 일. 그 성찰이 있다면 한 해는 헛되이 지나가지 않았다.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삶의 절반쯤을 이해한 셈이다.
시와늪문인협회 대표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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