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와 야당의 길

민주주의란 ‘야당이 있는 정치체제’라 할 수 있다. 이때의 야당이란 반대당(opposition party)의 역할을 하면서 향후 집권당이 될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를 뜻한다.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없는 체제, 혹은 여당으로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요구를 야당이 효과적으로 조직하지 못하는 체제를 정치학에서는 ‘제한된 다원주의’(limited pluralism) 내지 권위주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는, 정권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야당 스스로의 무능력에 의해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야당에 실망해 정치로부터 이탈하거나 “집권은 무슨, 야당이나 잘하라”는 사람들도 많다. 여러 차원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야당이 정당다운 정당의 역할을 못하는 한 민주주의라는 ‘형식’ 안에서도 얼마든지 권위주의 시대의 ‘내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당은 여러 차원을 갖는다. 첫째, 정당은 이념 내지 세계관의 조직자이다. 영국의 보수당을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말했듯, “정당이란 조직화된 의견이다”. 정당으로 조직된 사회적 의견이 두 개면 양당제, 그 이상이면 다당제라 부른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열정이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이념 없이 시민들을 넓게 대표하고 조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야당들은 어떤 사회적 의견의 조직자들인가? 민주당이 발전시키고 있는 가치와 비전은 무엇인가? 제발 더는 당명을 바꿔서 신장개업하고 공허한 구호를 앞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정책 하나를 말할 때마다, 교육정책 하나를 검토할 때마다, 사회정책 하나를 새로 만들 때마다 체계화가 가능한 가치와 논리를 축적해 가길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그럴 때만이 친노-비노니 하는 ‘불모의 흥분’ 대신, 내용 있는 정당으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당은 사회갈등의 통합자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모두 자본주의 경제체제 위에 서 있다. 아무리 지역균열, 세대균열, 종교 및 문화 균열 등을 말한다 해도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사회경제적 균열만큼 크고 지속적인 갈등요인은 없다. 그 핵심은 노동 문제이다. 노동 문제가 나쁘면, 그 어떤 인간 사회도 공동체적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협동해 땀 흘려 일하는 것의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사회에서 튼튼한 경제의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민주당을 포함해 야당들의 노동관은 온정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민주주의 발전에 유익한 역할을 하는 정당이냐 아니냐를 판단함에 있어 기초적인 기준은, 온정이 아닌 시민권의 관점에서 노동 문제를 통합해내는 실력에 있다고, 필자는 본다.
셋째, 정당도 조직이다. 조직이라면 응당 의사결정의 구조가 좋아야 한다. 그래야 책임성이라는 민주적 원리를 실천할 수 있다. 그러려면 리더십이 안정돼야 한다. 정당의 리더십은 대중권력의 요체이다. 리더십이 약하면 파벌은 당 조직을 농단하는 도당이 된다. 그렇게 되면 집합행동의 딜레마는 극대화되고, 어떤 조직이든 꼭 필요한 신뢰를 제도화할 수가 없다. 당의 분열과 분란은 필연적이다. 안정된 리더십이 기능해야 파벌과 계보가 당내 다원주의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대중적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적어도 시·도당 차원에서는 정당이 시민생활의 조직자가 돼 주어야 민주주의가 산다. 그래야 지방자치도 의미가 있다. 최소한 당비 내는 당원이 5000만 시민의 1%인 50만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 예산에 의존하는 정당이라면, 유사 공기업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시민의 자발적 정치결사체라고 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야당이 없으면 시민주권은 공허한 말이 된다. 사람들이 국민의힘의 미래, 장동혁 부수정당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관심을 끊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구든 제대로 된 정당 만들기에서 성과를 낼 때 한국 민주주의는 멈췄던 걸음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국민의힘의 새 출발이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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