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하라에 지다. 파리 -다카르 경주의 추억/지옥의 랠리 스물두번째 날 지옥의 랠리 -최종림 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3-14 11:15

📍 생 루이Saint-Louis-다카르Dakar, 250km, 마지막 스페셜 스테이지.

공식 주파 거리 12,457km, 실제 주행거리 14,831km.



 


마지막 아프리카의 햇빛


대회 조직위 시간 6시, 현지 시각 새벽 4시, 마지막 브리핑이라 하는 수 없이 만신창이 몸으로 참석했다. 아직 깜깜한 밤이다. 웬 꼭두새벽이라니. 오늘 경주 코스는 해안선 썰물 시간대에 맞춰 생기는 모래사장을 타기 위함이란다. 조직 위원장 질베르 사빈느 씨의 특별 브리핑이라지만 내 눈은 계속 아래로 감기고 한기가 들어 몸은 떨고 있다. 이질 증세에 통증을 수반한 밭은기침, 모기에 많이 물려 가렵고 부은 상처보다 말라리아에 걸린 듯도 싶다. 


햇볕 화상으로 몇 번 껍질이 벗겨지던 얼굴은 이제 상처로 짓무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는 몸 상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니라면 나는 경주를 포기하고 파리로 후송돼야 할 심각한 상태다.


눈을 감고 고개가 처지는 내 뒤에서 누군가 목 뒤를 살며시 주물러 주었다. 한 눈만 떠보니 소피였다.

"S(C)a-va toi?" 그녀는 속삭이듯 '괜찮니?'라고 물었다. 나는 약하게 고개를 흔들기만 하다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S(C)a va pas moi..., je vais mourir(아니, 별로야... 나 죽을 거야.)"

소피와 몇 명이 나를 쳐다보았다. 브리핑 장을 나오며 그녀는 헤어지기 전 내게 속삭였다.


"야, 오늘은 아냐. 죽으려면 내일 죽어. 다카르는 가야지, 응?"



대회 본부 임원들이 마지막 구간에 도착하는 주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해안가 경주 코스까지 가는 뽐풀까지의 접선 구간 30km는 정말 엉터리 길이다. 아프리카의 길 대부분에 거리 이름이나 지역 이름 안내, 표지판 등은 좀처럼 없다. 더구나 길 위 아무 곳에서나 드러누워 있는 당나귀, 소들이 오늘따라 성가시기 이를 데 없고, 그것들뿐이 아니다. 부엉이나 산토끼 같은 야생 짐승들도 우리가 대낮같이 밝히는 서치라이트 불빛에 시력을 잃고 죽은 듯 길 위에 멈춰 서있어 대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8시 30분, 이제 갓 물이 빠지며 나타나기 시작한 해변은 달리기엔 최적지이다. 마지막 속도 접전이 무섭게 시작되고 있다.


방향 다카르!


얼마나 목말라 하며

사력을 다한 완주이더냐!

얼마나 운이 좋아야,

얼마나 곳곳의 하느님에게

기도를 잘해야 하던 것이더냐!


멀리 어디선가 햇빛이 비치고,

해안선만큼이나 긴 파도 줄기가

어둠과 여명 사이에서

끊임없이 빚어져 나오고 있다.

다 찌그러진 우리 차는

요술 할머니가 타는 방석처럼

날아가고 있다.

이미 또 반이나 모래바람에 잘려나간

태극기는 흔쾌히 떨며

앞쪽 깃대에 믿음직하게 꽂혀있다.


사만 리 길고도 험했던 여정에

마지막 위안이라도 하려는 듯

해안의 굽이굽이는

아름다운 이의 자태처럼 부드럽고 평안하다.

이년 저년 욕만 얻어먹던

만신창이의 내 애마가

지금의 내겐 호사스러운 낭만이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아프리카의 원시 속 별밤을 지새며

욕쟁이 주인과 함께 얼마나 힘들었겠냐...

고맙구나."


언제나 곱고 은밀한 것들만 있으면

바다로 데리고 나왔던 지난날,

바다는 항상 큰 용기로

나를 용솟음하게 했고,

그것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처럼 지금, 저 바다는

그동안 선인장 가시처럼 말라온 심신을

흥건한 끈적임 속으로 풀어놓는다.

먼지에 찌들었던 내 눈은

축축한 대서양 기운에 서려

참 오랜만에 한 줄기 물기가 뺨을 적셔 내렸다.

"..."

떠오르는 아침 해에

사나이의 민망함이 비친다.


"다 왔지."

제롬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우리는 형편없이 망가진 서로의 몰골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놈의 눈에 설깃 물기가 배이고 있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대로 밟았다. 내 혈육만치 미더운 놈 아니더냐...

오후 2시 12분. 다카르의 붉은 호수를 돌아 우린 아치 속 인산인해의 인파 속에 묻혔다.


인파 속에 선 내 물골.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몹시 야위었다.



‘사하라에 지다’ 연재를 마치며_이원희 기자


파리에서 출발해 사하라의 모래바람을 지나 다카르에 이르는 길은 단순한 랠리 코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인내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묻는 긴 여정이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한국인 최초 완주라는 기록을 통해 한 사람의 도전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길 수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모래와 바람, 고장과 길 잃음의 순간들을 견디며 끝내 도착점에 닿은 그 여정은 스포츠의 기록을 뛰어 넘은 삶의 상징으로 남는다.


연재를 이어오는 동안 많은 독자들이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었다. 글을 써 내려간 최종림작가님과, 한 회 한 회를 읽어 준 독자들이 함께 만들어 낸 시간이었다. 긴 사막의 길이 결국 다카르의 바다에 닿듯이, 이 연재 또한 독자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는 마음으로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음 회에는 최종림 작가의 시론을 통해 ‘사하라에 지다’ 연재의 여운을 또 다른 시선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더불어 시를 배우고자 하는 고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몇 가지 생각을 함께 나누려 한다. 사막의 길이 끝났다고 해서 여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다음 페이지에서 다시 시작된다.





최종림 작가 프로필


출생: 부산

학력: 프랑스 파리 4 대학 현대 불문과 졸업

데뷔: 미당 서정주 추천으로 『문학 정신』을 통해 한국 문단에 등단


주요 경력:

한국 시인 협회 회원

한국인 최초 FISA 자동차 경주 자격증 A** 취득

파리-다카르 사하라 사막 자동차 경주 참가 및 완주


주요 작품: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 『사라진 4시 10분』, 『사하라에 지다』

시집: 『에삐나』

논픽션: 『사하라 일기』

오페라 시나리오: 『하멜과 산홍』, 『오디푸스의 신화』(번역 및 각색)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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