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⑩] 자주목련꽃, 노래가 된 시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24 11:42

소가지 못된 계집아이처럼

봄볕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 돌린

자주목련꽃들의 토라진 마음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아

자주목련꽃


박상봉


주먹만한 흰 꽃들

활짝 피어난 백목련나무 곁에

꽃몽우리 막 부풀고 있는

자주목련나무를 보면

누군가를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인생의 꽃 같은 나날

돌아올 것만 같아

세상 모든 나무의 꽃들과 잎사귀

해 바라고 섰는데

소가지 못된 계집아이처럼

봄볕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 돌린

자주목련꽃들의 토라진 마음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아

연분홍빛 자주색 꽃잎이 스스로 몸 열고

흰 속살 보여줄 때까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그윽한 눈길로 말없이 바라보며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자주목련꽃목련꽃 흐드러지게 핀 어느 해 봄날에 「자주목련꽃」이라는 내 시가 우리가곡 발표 무대에서 노래로 불린 적이 있다. 꽃을 오래 바라보며 얻은 발견이 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형식으로 옮겨간 순간이었다. 시가 눈으로 시작되어 귀로 완성되는 경험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이어진 자리에서, 그날 가곡 행사를 주관한 음악 잡지사 발행인이 내게 등단을 어디로 했느냐고 물었다. 이어 꽃 이름을 정확히 써야 한다며 「자주목련꽃」이라는 제목을 문제 삼았다. 그는 자주목련꽃을 자목련꽃의 오기라고 단정하며 수정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시가 자유로운 형식이라 하더라도 꽃 이름을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밥맛이 떨어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꽃을 오래 바라보고 얻은 이름이었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시의 언어는 막연한 관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물과 만나는 자리에서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자주목련을 자목련의 오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목련과 자주목련은 분명히 다르다. 꽃잎 바깥쪽이 짙은 자주색이고 안쪽까지 자주색이면 자목련이고, 바깥쪽은 자주색이지만 안쪽이 흰색이면 자주목련이다. 자목련은 자주목련보다 보름 정도 늦게 피며 꽃도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요즘 거리에서 활짝 피어 있는 자주빛 목련은 대부분 자주목련이다.


자목련꽃

자주목련의 또 다른 특징은 방향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해를 향해 서 있는데 자주목련은 해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피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토라진 아이처럼 얼굴을 살짝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차이는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가 아니라 매일 지나는 길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알게 된 것이다.


책상 위에서 얻은 지식에는 오류가 많다. 사물을 직접 보지 않고 얻은 정보는 쉽게 흔들린다. 일상의 범상한 시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상에 오래 머무르는 눈이 필요하다. 순간마다 달라지는 햇빛의 방향, 계절에 반응하는 나무의 몸짓을 놓치지 않는 집중이 필요하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 사물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내가 쓴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경험은 「자주목련꽃」뿐만이 아니었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던 시절, 구로공단이 첨단 IT 산업단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며「G밸리의 노래」를 쓰게 되었다. 꽃의 변화를 바라보듯 산업의 변화 또한 하나의 풍경처럼 다가왔다.


G밸리는 제조업 중심의 구로공단에서 첨단 정보기술 산업단지로 변모한 공간이다. 낡은 공장 건물 사이로 새로운 연구소가 들어서고, 생산의 방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고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는 느낌을 받았다. 산업의 변화 역시 자연의 변화처럼 시간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누이들의 땀방울로 일으킨 한강의 기적”이라는 노랫말 속에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온 세대의 기억이 담겨 있다. 꽃이 피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듯 하나의 산업단지가 변화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 시간을 언어로 붙잡아 두고 싶었다.


2010년 12월 3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G밸리 가곡제」포스터

2010년 12월 3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G밸리 가곡제」에서 「G밸리의 노래」가 초연되었다. 내가 쓴 시 「자주목련꽃」도 그 무대에서 함께 노래로 불리어졌다. 자연을 바라보며 얻은 시와 산업의 변화를 바라보며 얻은 시가 한 자리에서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


시는 특정한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꽃 한 송이도 시가 되고, 산업단지의 변화도 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바라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과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시는 발견이다. 발견은 관찰에서 온다.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쓰고 발로 쓰는 것이다.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작은 세계 속에 숨어 있는 의미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확히 본다는 것은 결국 세계를 사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기다리고, 끝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다. 꽃이 피듯 시가 피고, 노래가 되어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장성현가곡교실 [2842] 자주목련꽃 

박상봉 시/정덕기 작곡  

https://youtube.com/watch?v=FrlsluapwVk&si=jW1ZIQ-70l6Z8Sj3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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