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⑫]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28 15:53

1930~194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을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에 헌신, 역설적 시대를 산 예술가 이야기

이상은 건축가이자 시인, ‘제비다방’ 중심으로 활동

문학과 미술, 건축, 디자인을 넘나든 전위 예술가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포스터

오감도


이상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잡지 ‘별건곤(別乾坤)’의 표지 그림

이상의 대표작 「오감도(烏瞰圖)」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된 작품으로 실험적 구성, 숫자와 기호 활용, 불안한 시대의 감각 표현 등으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제목 ‘오감도’(烏瞰圖)는 건축 용어 ‘조감도’(鳥瞰圖)에서 온 말이다. 보다시피 鳥와 烏는 닮은꼴 한자이다. 제목의 烏는 인쇄 과정의 오자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시 내용과 구조부터가 파격적인데 가장 먼저 읽게 될 제목부터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음울한 분위기로 보아 까마귀라는 새의 이미지와 획 하나가 부족한 불완전한 단어를 통해 암울한 분위기와 불안감을 일부러 형상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상은 건축가이자 시인이었으며, 경성의 다방 ‘제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문학과 미술, 건축, 디자인 감각을 넘나든 대표적인 전위 예술가였다. 당시 예술가들이 다방에 모여 교류했던 모습은 말 그대로 한국판 ‘에꼴 드 파리’라 불릴 만큼 활발했다.

 

이상은 문학·미술 경계 넘나든 예술가로 시뿐 아니라 건축 도면, 시각적 배열, 기호 실험 등을 통해 문학과 미술의 융합을 보여주었다. 시대의 불안과 부조리를 표현, 식민지 경성의 불안, 근대성의 혼란, 개인의 고립 등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 시대 문학과 예술의 연대가라는 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시인이다. 대표 구절로 알려진 문장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이 문장은 규범이 붕괴된 시대의 감각을 상징한다.


예술가 공동체와의 교류


이상은 화가 구본웅, 시인 김기림과 정지용,  소설가 박태원 등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문학·미술의 교차 지점을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경성의 다방 문화 속에서 새로운 예술 감각을 모색했다.


5년 전 들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 앞에서 필자.
5년 전 서울 석달살기 마지막 답사 코스로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를 만나러 갔다.


 ‘시대의 전위’를 함께 꿈꾸었던 일제 강점기와 해방시기 시인 정지용, 이상, 김기림, 김광균 등과 소설가 이태준, 박태원 등, 화가 구본웅, 김용준, 최재덕, 이중섭, 김환기 등 그들의 관계를 통해 문예인들의 지적 연대를 조명하는 전시회였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화가 구본웅의 작품 ‘친구의 초상’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한 남성, 어선가 많이 본듯한 그림인데 화가 구본웅의 작품 ‘친구의 초상’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그의 절친으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다.


‘이상’이 직접 운영한 ‘제비다방’에서 들을 수 있었던 미샤 엘만의 협주곡을 들으며 ‘이상’의 강렬한 눈빛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백석의 시 ‘나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실린 화가 정현웅의 그림, 화가 이중섭이 자신의 친구이자 시인인 구상의 가족을 그린 작품 그림뿐 아니라 글 속에서도 그 시대에 생각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덕수궁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물.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포스터 앞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191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는 일제강점기는 통상적으로 어둠의 시대, ‘절망’의 시대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그 시대의 역사를 돌아보는 많은 이들은 상처를 들추는 것으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물론 식민지배라는 국가의 외압으로 살아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불행의 깊이로 근본적으로 모순된 사회 구조를 드러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이전의 전통 사회와 지금의 현대 사회를 잇는 엄청난 변혁의 시기로, 상상할 수 없이 빠른 신문화의 충격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생겨났던 역동의 시대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전시는 1930~1940년대 경성이라는 시공간을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에 헌신하여 이 역설적인 시대를 살아내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프랑스의 에꼴 드 파리가 그리려했던 것처럼 다방과 술집에 모여 앉아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인식을 공유하여, 함께 지식의 전위를 부르짖은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사회적 모순과 몰이해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알고 이를 함께 추구했던 예술가들 사이의 각별한 연대감을 통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갈 추동력을 얻었다.


한국 근대기 문학인과 미술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들을 발굴하고 소개한 이 전시를 통해 비록 가난하고 모순으로 가득 찼던 시대 한가운데서도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예술가들의 멋진 신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다.


구본웅의 서명이 새겨 있는 여행가방.

박상봉 사회부장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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