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가슴 설레게 할 영화 《비포 선라이즈》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좋아
눈으로 담아둘래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게요.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영화《비포 선라이즈》포스터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 번의 밤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은 비엔나의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과거와 생각을 나눈다. 특별한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대화는 점점 깊어지고 시간은 점점 가벼워진다. 그들의 사랑은 소유나 약속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함께 걸었던 시간의 밀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김광섭 의 시 「저녁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의 별을 바라보듯, 수많은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경험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존재의 깊은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다. 시 속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만남이 끝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되는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문장은 또한 유심초의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통해 대중적인 울림을 얻었다. 이 노래는 한 번 지나간 만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과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노래한다. 사랑은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 다른 형태로 살아남는다.
《비포 선라이즈》의 두 인물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그러나 그들이 나눈 대화와 함께 걸었던 길은 각자의 삶 속에서 오래 남는다. 사랑은 언제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완전한 상태로 남을 때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김광섭의 시와 유심초의 노래,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는 모두 말한다. 만남은 소유의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경험이며, 헤어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지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국 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에게 남겨진 문장 속에서 계속 이어져 간다. 어쩌면 사랑이란, 함께 있었던 시간을 서로의 기억 속에 맡겨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제시와 셀린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알베르티나 박물관(Albertina Museum) 난간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낭만적인 순간.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1995년 리처드 링클레이트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옛날 같지 않은 세련됨이 넘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경으로 하는 명장면과 명대사 그리고 아름다운 배경음악들의 향연은 관객들을 낭만적인 러브 판타지에 빠뜨리며 연애를 부르는 영화다.
이 영화는 남자 제시(에단 호크 분)와 여자 셀린(줄리 델피 분)이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목적지가 파리였지만, 비엔나에서 내려 하루를 함께 보낸다.
특히 오래전에 필자가 여행을 갔던 아름다운 비엔나의 낯익은 풍경들이 기억창고 속에 깊이 넣어둔 여행에 대한 동경과 프라하-빈-로마로 떠돌아 다니던 한때의 기억을 다시 뒤적이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명대사가 가슴을 울리는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의 대화가 너무 좋다. 따뜻한 봄날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할 영화 속 로맨틱한 명장면과 명대사 그리고 배경음악에 대한 자료들을 인터넷 검색으로 다시 찾아보았다.
“신(神)은 너와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참으로 멋들어진 대사가 아닌지?
두 연인이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앉았던 노천 카페에서 점장이 노파가 두 사람에게 비밀 하나를 알려주는 것도 명대사다.
“인생의 파도에 자신을 맡겨요. 자신 속에서 평화를 찾는다면 진실한 친구를 얻을 거예요..., 두 사람은 별이야. 잊지말아요. 두 사람은 수십억 년 전 별들이 폭발할 때 세계의 모든 것이 행성됐지. 모든 것은 별의 파편이야. 별이란 걸 잊지 말아요.”
두 사람은 별이라고...별의 잔해이자 티끌이라고...그리하여 티끌 하나 하나에 따로 떨어져서 신(神)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티끌 사이에 신이 존재한다고...
영화《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 그들이 하룻밤을 보낸 비엔나시민공원두 사람이 하룻밤을 함께 보낸 다음날, 헤어짐을 앞두고 아쉬움으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바흐의 곡(골드베르그 변주곡 : 변주곡의 구약성서)이 들려 안타까운 걸음걸음을 더 아련하게 만든다.
음악에 맞취 춤을 추던 두 사람은 결국 키스를 한다. 딸콤쌉싸릅한...딥 키스를...
영화《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비포 선라이즈 명장면 명대사
영화《비포 선라이즈》한 장면. 저녁 데이트를한 비엔나의 유서 깊은 카페
1. 귀여운 고백의 Ring Ring 씬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좋아”
136년 된 비엔나의 유서 깊은 카페 ‘카페 슈페를’에 앉아 각기 다른 언어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제시’와 ‘셀린’은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상황극을 한다.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편한 말투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은근히 고백하는 이 장면은 ‘비포 선라이즈’의 대표적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비포 선라이즈》의 대표적인 명장면. ‘제시’와 ‘셀린’은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상황극을 한다. 이때, “아름다운 꿈을 가슴에 품은 꼬마라니 너무 사랑스럽잖아. 거기에 사로잡혔어. 게다가 잘생겼고 예쁜 푸른 눈과 붉은 입술에 기름진 머리까지 맘에 들어. 키는 큰데 어설픈 구석이 있어.”라는 ‘셀린’의 귀여운 고백은 관객들로 하여금 사랑의 첫 시작의 설렘을 떠오르게 만든다.
2. 미리 Say Good-bye 씬 “Au revoir”, “Later”
예정된 이별에 덤덤한 척 했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셀린’은 ‘제시’에게 “괜히 서글퍼서요. 이제 우린 내일 서로에게 언제 작별인사를 해야 할 지만 생각할 테니까요.”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셀린’의 손을 감싸 쥐며 ‘제시’는 “지금 미리 해요. 그럼 내일 아침에 이 말 때문에 걱정 할 일 없잖아요.”라며 서로의 아픈 마음을 위로한다. “Good-Bye”를 서로 주고 받고는 다시 나누는 “Au revoir.” 와 “Later.”는 서로의 언어로 전하는 다시 만나자는 의미의 인사말로 지금의 이별을 영원한 이별로 생각지 말자는 두 주인공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영화《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하프시코드 연주에 몸을 맡기고 왈츠를 추는 ‘제시’와 ‘셀린’.
3. 순간을 박제하다. “눈으로 담아둘래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게요.”
날이 밝고, 들려오는 하프시코드 연주에 몸을 맡기고 왈츠를 추는 ‘제시’와 ‘셀린’. 둘은 춤 추는 것을 그만 두고 가만히 눈을 맞춘다. “눈으로 담아둘래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게요. 그리고 이 곳의 모든 것들까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박제하여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어 하는 ‘제시’의 로맨시스트적 면모가 돋보이는 이 장면은 그들에게 예정된 이별을 슬픔이 아닌 낭만적인 분위기로 채워 그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준다.
영화《비포 선라이즈》의 명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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