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㉒]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4-01 10:00

당신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내 기쁨이여 늘 그대가 그립소

당신과 아이들이 꿈에 나왔소 보고싶소

이중섭의 대표작「황소」


섶섬이 보이는 방

-이중섭의 방에 와서


나희덕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던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나희덕 시집 『야생사과』(창비,20019)


영화《이중섭의 아내》포스터

한국 근대서양화의 대표 화가로 손꼽히는 이중섭(李仲燮, 1916~1956) 


그는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 작가로 평가 받는 화가다.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로 유학 중, 1938년 일본 자유미술과협회전에 출품해 주목 받았다. 


1943년 귀국해 해방되던 1945년에 일본인 마사코(한국명 이남덕) 씨와 결혼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4후퇴 때 원산을 떠난 이중섭과 그 가족은 잠시 부산에 머문 후 제주 서귀포에 도착한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있었던 시기는 1951년 1월에서 같은 해 12월까지이니 대략 11개월 가량이다. 이 시기를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이라고 부른다.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부족한 찬이지만 함께 밥을 먹고 서귀포 앞바다에서 게(깅이)를 잡아 끼니로 때울지라도 함께 웃으며 가족의 정을 만끽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부인 이남덕 씨도 제주 서귀포 시절을 “시댁 식구들을 벗어나 달랑 네 식구만 남고 보니 소꿉장난처럼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다른 곳에서의 피난 시절에 비해 서귀포에 머물던 시간에는 안정된 주거공간이 있었기 때문으로 당시의 그림에는 희망이나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이중섭, 1951년, 32.8×58cm, 패널에 유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란 작품을 보면 그 당시 서귀포 보목리에서 바라본 아름답고 평온한 섶섬과 바다 풍경을 담고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있어 지상의 유토피아로서의 공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림 속 평온함과 달리 그의 실제 삶은 매우 궁핍했다. 1951년 1월 제주항에 도착한 뒤 그해 12월 부산으로 떠날 때까지 약 1년 동안 이어진 제주 생활은 말 그대로 생존의 시간이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소 외양간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고, 며칠 동안 고구마로 끼니를 연명하기도 했다. 서귀포에서는 작은 방 하나에 머물며 배급받은 쌀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식량이 부족할 때는 게를 잡거나 해초를 뜯어 죽을 끓이고 반찬으로 삼았다. 이러한 궁핍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이중섭에게 제주는 단순한 피난지가 아니라 예술적 전환의 공간이었다.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 바다와 섬이 있는 풍경, 전쟁 속에서도 지속되는 일상의 리듬은 그의 작품에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정서를 남겼다.


특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높은 시점에서 마을과 바다를 동시에 담아낸 구성으로, 제주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이중섭미술관 주변에서는 작품 속 풍경과 유사한 구도를 비교적 온전히 느낄 수 있어, 그의 기억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결국 제주에서의 1년은 가난과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이중섭 예술 세계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던 시기였다. 전쟁 속에서도 자연의 평화를 포착하려 했던 그의 시선은, 삶이 아무리 흔들려도 예술은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영화《이중섭의 아내》한 장면

지금은 문을 닫은 대구 중심가에 있는 동성아트홀에서 몇해 전에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를 본 적이 있다. 그의 생애와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감동적인 영화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일본인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로 민족화가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더듬어봐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는데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과 사랑을 아주 잘 그려낸 작품성 높은 다큐멘터리로 기억하고 있다.


영화《이중섭의 아내》한 장면. 가운데가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다.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는 1941년 재학중이던 일본 도쿄문화학원 복도에서 붓을 씻다가 선배인 이중섭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1945년 3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마사코는 오직 이중섭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그해 5월 지금은 북한 땅인 원산에서 전통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대략 8년 동안 두 사람은 함께 살았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도 잠시, 6.25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제주도로 피난 다녔다.


영화《이중섭의 아내》한 장면. 이중섭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편지.

이중섭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난 뒤 아내는 이중섭을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그 시절에는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않은 상태라서 불가능했다.


이중섭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이 컸을 것이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글들을 볼 때마다 곳곳에 드러나는 그리움과 세월의 그림자가 너무 깊어 마음이 아프다.


영화《이중섭의 아내》한 장면. 이중섭이 사랑한 가족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의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Fear or Love)》 전시가 2022년 4월 8일 ~ 2022년 11월 13일 열렸다.


800여평 공간에서 선보이는 창관 이래 최초의 대규모 기획전시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룩한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박수근 등 한국 근·현대 거장 미술가 31인의 주요 작품 140점을 집대성한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두려움과 사랑의 관계를 조망한 전시였다고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서울미술관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이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터, 4만 2900㎡ (1만3천 평)의 드넓은 땅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인왕산 자락의 거대한 바위와 멋들어진 소나무가 그야말로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천하 명당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군자의 거처, 군자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지 할 수 있는 천하제일 절경이다. 서울미술관을 관람하면 이런 절경을 덤으로 볼 수 있겠다.


그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들이 이중섭의 제주 생활을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유명 작품 10여점을 제주로 기증할 것이라는 발표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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