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㉔] 물에 잠긴 귀가 듣는 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4-07 12:31

아이들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물에 잠긴 세월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 곳에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고

영화《생일》포스터

생일


김혜순


아침에 눈 뜨면

침대에 가시가 가득해요

음악을 들을 땐

스피커에서 가시가 쏟아져요

나 걸어갈 때

발밑에 떨어져 쌓이던 가시들

아무래도 내가 시계가 되었나 봐요

내 몸에서 뾰족한 초침들이 

솟아나나 봐요

그 초침들이

안타깝다

안타깝다

나를 찌르나 봐요

밤이 오면 자욱하게 비 내리는 초침 속을 헤치고

백 살 이백 살 걸어가 보기도 해요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 곳에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고

행복하다고

당신 생일날

그 초침들로 만든 케이크와 촛불로

안부 전해요


실제 어제 필자의 생일상

비 내리는 생일날 아침.

침대에 가득한 가시와 발밑에 떨어져 쌓이던 가시들


내 몸속에 뾰족한 초침까지 모두 제거하고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 곳에 살고 있는


외손녀, 바이올린 연주가 

온몸 기운 활짝 열어젖히는 

기쁜 아침의 소리다.


생일 기념으로 베란다 화분에 해바라기씨를 파종했다.

한식(寒食) 날 생일 기념으로 베란다 화분에 해바라기씨를 파종했다. 한식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동지(冬至)가 지난 뒤에 105일이 되는 4월 5일 무렵이 한식이다. 올해는 청명·식목일도 같은 날로 겹쳤다. 이날 성묘나 묘 손보는 일을 많이 한다.


옛날에는 이 날에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祭享)을 지내고 민간에서도 산소로 올라가 성묘를 했다. 때문에 교외로 향하는 길에 인적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한다. 


어제는 청명(淸明)이기도 하고 식목일이라서 다이소에 가서 해바라기 재배세트를 사와 화분에 씨앗을 심고 베란다에 내어놓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을 지내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당연한 일인데 내 나이 계산을 잘 못하겠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나이 한 살을 먹는다. 이는 관습에 따른 셈법이다. 어머니 배에서부터 생명체로 자라온 기간을 나이 한 살로 치는 것이다. 그 뒤 출생일에 상관없이 해가 바뀌어 ‘떡국’을 먹고 나면 두 살이 된다. 그것을 ‘세는나이’라고 한다. 


‘만 나이’는 태어나 만 1년 뒤에 비로소 한 살이다. 그 이듬해 다시 출생일이 돌아오기 전까지 계속 한 살이다. 그래서 세는나이에 비해 많게는 두 살이 줄어든다. ‘연 나이’는 무조건 지금의 해에서 태어난 해를 빼는 방식이다. ‘만 나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출생일을 따지지 않는 게 다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나이 셈법을 당해 연도에서 태어난 햇수를 빼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계산법으로 바꼈다. 나이 계산도 이제 단순해졌다.

사실 음력으로 하는 나이 계산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나이는 완전 고무줄이라서 생일을 양력으로 쇠는 나의 경우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들과 한살 또는 두살 차이가 나고, 심지어는 ‘서른살’(섣달에 태어난 사람)이란 이상한 계산법이 또 하나가 더 있어 세살까지도 차이가 난다.


거기다 호적을 늦게 올렸다고 하면 네살이나 다섯살 차이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나이 셈법은 그냥 웃어 넘길 수 없는 코메디요, 한심한 부조리극이다.


나보다 한살 또는 두살 많다고 말하는 동갑내기들은 나를 아예 동생 취급한다. 남자들은 흔히 첫 대면해서 통성명을 나눌 때 서로 나이부터 따져보는 습성이 있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상대방 나이가 위라고 하면 당장 ‘민증 까자’고 대거리 걸어온다.


이른바 ‘위계질서’라는 미명 하에 나이, 군대, 학벌, 회사뿐 아니라, 심지어 깜빵의 짠밥까지 위계를 따져 줄을 세우는 우리나라 남자들의 속물 근성은 한번 재고해봐야 할 일이다.


영화《생일》포스터

생일에 대한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아버지 정일(설경구)은 사고 이후 죄책감을 안고 외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겨우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 순남(전도연)과 딸이 남아 있다.


가족은 서로를 위로해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된다. 아들의 방은 그대로 남아 있고, 작은 물건 하나에도 기억이 살아난다.


영화《생일》의 한 장면

이 영화의 중심에는 떠난 아이의 생일을 맞이하는 의식이 있다. 유가족들은 모여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과 물건을 준비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그 존재를 다시 불러낸다. 생일은 더 이상 축하의 날이 아니라 존재를 기억하는 날,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이어 붙이는 날이 된다.


정일은 가족을 떠났던 시간을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오지만, 가족과 쉽게 대화하지 못한다.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디고 있다. 학교, 식사, 집안의 풍경은 평범해 보이지만 모든 순간에 부재가 스며 있다. 


딸은 형의 흔적 속에서 자라고, 어머니는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려 애쓴다. 아이의 친구들, 가족, 주변 사람들이 모여 생일을 준비한다. 각자는 기억 속의 아이를 이야기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다.


개인의 슬픔이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완전한 치유는 없지만, 서로의 기억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큰 사건보다 작은 표정과 침묵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영화가 전하는 의미ㅡ기억의 공동체


생일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라 존재가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을 확인하는 의식이 된다. 슬픔은 개인의 몫이지만 기억은 함께 나눌 때 지속된다.


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울음보다 긴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과장된 사건 없이 일상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배우들은 절제된 연기를 통해 슬픔을 소비하지 않고 존중하는 시선과 기억을 매개로 이어지는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생일은 축하의 날이 아니라, 떠난 이를 다시 삶 속으로 초대하는 조용한 의식이다.


영화《생일》의 한 장면

물에 잠긴다는 것


박상봉 


아이들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물에 잠긴 세월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귀는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해

저 바다 깊은 물속에 산다


물에 빠져 귀를 잃고 사람의 말귀

알아듣지 못한 채 그냥 살았어


물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겨우 구조된 아이는

반 귀머거리가 되어 말도 잊어버리고


바다 깊은 물속에 두고 온 귀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데


물에 잠긴 귀가 듣는 소리는

아이들 우는 소리만 들린다

ㅡ 『물속에 두고 온 귀』 20~21쪽



2014년 4월 16일 아침, 수학여행 가던 학생 325명을 포함한 476명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304명의 생명이 배 선실에 갇혀 차가운 바다에 빠졌다. 희생 학생은 250명이고, 그 당시 미수습자 학생은 4명이었다.


그리고 16년째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 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더 아프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씻을 수 없는 아픔도 이제는 제대로 치유되는 방법을 찾아가게 되기를 희망한다.

박상봉 사회부장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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