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작은 것
박상봉
오늘도 성호공원 단원조각광장에 가서
너를 만났다
스물 두 폭 풍속화점 환하게 펼쳐진 공원 안
향훈 그윽한 바람의 화원
자산홍 잎사귀 붉은 물 오른
너의 작은 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움이 깊으면 젖도 탱탱 붉어지는가
물빛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너에게로 가는 아침 산책길이 무뚝뚝한 안개 속이다
단풍 든 노란 샛길 따라
수지법으로 더듬어 가야할 문장이다
너의 작은 것이 오늘은 남종화풍이다
* 인디언들은 11월을 ‘물빛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리크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체로키족) 등으로 불렀다.
ㅡ박상봉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 중에서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그린 역사극 SBS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포스터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예술·권력·정체성을 교차시키며 그린 역사극 SBS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 무렵 나는 안산에 살았다. 동네 산책 하다가 단원조각공원에 종종 들렀다. 이 때 조각공원에 있는 단원 김홍도 화가의 풍속화 작품 22개의 부조 벽화와 김승림 작가의 <박제된 자아>라는 조각 작품 등을 둘러보고 쓴 시다.
성호공원 단원조각광장은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는 화첩 같다. 김홍도라는 이름을 더듬다 보면, 어느 순간 샤라쿠라는 사라진 얼굴에 닿는다. 성호공원의 부조 앞에서 두 개의 시선을 동시에 느꼈다. 멀리서 바라보는 김홍도의 시선과 지나치게 가까이 파고드는 샤라쿠의 시선. 일본 에도 시대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10개월 동안 140여 점을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진 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995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 <샤라쿠>(写樂) 포스터
1995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 <샤라쿠>(写樂)는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 写樂)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샤라쿠에 관한 연구로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후랑크 사카이(본명은 사카이 마사토시(堺正俊))가 이 영화의 제작을 총지휘하고 또 스스로 이 영화의 중요한 등장인물인 판화 업자 츠타야 주사부로(蔦屋重三郎) 역을 연기하였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日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가 김홍도?
일본 에도시대에 활약한 일종의 풍속화이자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로 키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麻呂1753-1805),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1760-1849),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寫樂) 등이 명성이 높았다.
그 중에 샤라쿠는 1794년 5월경 에도(江戶,현재의 東京)에 홀연히 나타나 10개월간 140여점 그림만 남기고 사라졌다.
샤라쿠의 우키요에는 마네, 모네, 드가 등 전기 인상파를 비롯해 빈세트 반 고흐 등 후기 인상파까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샤라쿠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천재 화가의 반열에 올랐고, 일본이 세계 미술을 리드했다는 자긍심에 가득차게 해준 우키요에 화가로 손꼽힌다.
2010년 10월 20일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미래문화예드림&한국창극원의 박정기 작 박종철 연출의 창작초연 전통연희극 <1974년 사라진 300일> 포스터샤라쿠의 명성이 알려지게 된것은 1901년 독일의 평론가 유리우스 쿠르트에 의해 재발견된 덕분이다. 그는 『Sharaku』라는 책에서 “샤라쿠를 렘블란트, 베라스케스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미스테리한 것은 샤라쿠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져 왔지만, 본명, 생몰, 출생지 등은 물론, 누구로부터 그림을 배웠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일본에서는 무려 수십명이 샤라쿠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서적이 100여권에 이를 만큼 그의 존재를 밝혀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시가(詩歌)집 『만요슈(万葉集)』의 재해석으로 잘 알려진 이영희 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은 도쿄에서 발간한 『또 한 사람의 샤라쿠=もうひとりの写楽 』(河出書房新) 라는 저서에서 샤라쿠는 사실 정조가 일본으로 보낸 스파이 김홍도였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책에서 이영희 씨는 샤라쿠의 정교하고 해학적인 화풍, 붓의 터치, 그림 속 글의 내용 등을 보면 김홍도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김홍도는 1789년(44세)에 정조의 명에 따라 쓰시마(對馬島) 지도를 그려오기도 했던 적도 있다. 김홍도가 연풍현감으로 지내던 무렵(1792-1795), 정조의 밀명(密命)을 받아 일본의 군사정보 등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활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풍속화(浮世繪)를 그려 팔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영화 <샤라쿠>(写樂)의 한 장면
샤라쿠와 김홍도의 동일인물 여부에 대해서 여러 해 전에 KBS TV, 일본의 아사히 TV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김홍도라는 가설을 토대로 문헌학적 증거를 통해 밝혀 나가는 역사 추리소설과 연극과 영화도 나왔다.
아직까지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일본의 만화 소재로도 쓰인 김홍도의 우키요에 작품설은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나는 샤라쿠가 조선시대 천재 화가 김홍도임을 주장한 신영곤의 저서인 『비밀 조선통신사 김홍도』를 주목해 읽어보았다. 이 책은 오직 역사 기록물을 바탕으로 객관적 자료만으로 추적한 미술역사 교양서다.
이 책의 요지는 정조 때 연풍현감(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장)이었던 김홍도가 왕명을 받아 비밀 스파이로 일본에 파견됐고, 스파이 활동 중 그가 그린 그림이 일본에 남아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불가사의 우키요에(=‘우키요’는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하는 말로 미인, 기녀, 광대 등 풍속을 중심 제재로 한다. 목판화가 주된 형식) 화가로 알려진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 寫樂)가 바로 단원 김홍도라는 것이다.
일본 에도시대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 寫樂)가 바로 단원 김홍도라고 주장하는『비밀 조선통신사 김홍도』저자 신영곤 미술사학자.
저자는 이 책이 결코 소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과 관련 자료들을 증거로 제시한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200여 년간 지속됐다. 거의 모든 국왕들의 재위 때 파견된 셈이다.
그런데 정조 재위(1776~1800) 연간에는 일본의 국내 사정 등으로 인해 단 한 차례 통신사 파견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정조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조가 스파이 파견이라는 대응카드를 꺼낸 배경이다. 문헌에 따르면 정조는 1794년 3월 5일 승정원 승지 전원에게 갑자기 외부 출장을 명령한다. 왕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참견하는 고위관리들에게 한꺼번에 자리를 비우도록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정조는 바로 이날 연풍현감 김홍도를 불러 에도로 잠입하도록 어명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3일 뒤 ‘지방관 단체 하직 행사’를 빌미로 ‘단원의 비공식 에도 밀파의식’을 거행하고, 그 자리에서 북방으로 떠나는 한 장수에게 “그곳 풍토가 어떠한지 백성의 재물이 어떠한지 살펴보라. 상세히 관찰하고, 수집하고, 염탐하고 돌아오라”고 공개적으로 어명을 내렸다. 일본으로 밀파되는 단원에게 했던 말도 동일한 내용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홍도가 대마도를 통해 일본 에도에 도착하는 데 두 달에서 두 달 보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4월 하순이나 아무리 늦어도 5월 초쯤에는 에도에 도착했을 것이라는데...그곳에서,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가부키 극장에서 극장 배우들의 모습을 목판화로 제작해 판매하던 판화업자 ‘츠타야 주자부로’를 만나 일필휘지로 배우 그림을 그려 보임으로써 전속계약을 어렵지 않게 따냈고, 이 시기는 그의 이름 ‘동주재 사락’으로 낙관이 찍힌 판화가 세상에 등장한 1794년 5월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김홍도가 밀명을 완수하고 귀국함에 따라 9개월 뒤 ‘동주재 사락’과 그의 작품이 일본에서 사라진 시기와도 일치한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좌) 씨름도의 부분-김홍도 作 (우) 3대 오타니얏코에도베-도슈사이 샤라쿠 作정말 ‘도슈사이 샤라쿠’가 ‘단원 김홍도’일까? ‘동주재 사락’, 다시 말해 ‘도슈사이 샤라쿠’가 단원 김홍도라면 일본과 한국의 그림은 동일한 특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샤라쿠의 일본 작품과 한국의 김홍도 작품을 비교하며, 두 작품이 동일한 사람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증거의 핵심은 두 사람의 작품에 동시에 관찰되는 거스트만 증후군(손발 인지장애)의 흔적이다.
단원 김홍도는 손발의 인지에 장애를 가진 거스트만 증후군 소지자였다고 한다. 단원이 영조-정조-순조의 3대 국왕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어진의 주관화사(主管畵師)가 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김홍도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손이 부자연스러운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데 샤라쿠 작품에서도 나타난 손 표현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발견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로는 샤랴쿠의 그림에 찍힌 낙관에 대한 분석이다.
낙관과 함께 찍힌 동주재사락(東洲齊寫樂)이라는 글씨를 한글로 풀이하면 동주재는 조선의 동쪽에 집이 있다. 즉 일본에 집이 있다는 말이고 ‘사’는 김홍도의 또다른 호인 ‘사능’에서 따온 글자이며, ‘락’은 김홍도가 일본으로 가기 전 현감으로 있던 ‘풍락헌(豊樂軒)’에서 따온 글자라는 것이다.
전체 뜻은 조선의 동쪽 섬에서 풍락헌의 현감 김홍도가 그림을 그려 즐겁다는 뜻이다. ‘동주재사락’을 일본 발음으로 하면 ‘도슈사이 샤라쿠’가 되는 것이다.
1745년(영조 21)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김홍도는 출신 가문이 원래 무반에서 중인으로 전락한 집안이라는 것만 확인되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그의 나이 7, 8세 때부터 경기도 안산에 있는 강세황(姜世晃)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어린 시절을 안산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샤라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져버렸고, 그의 그림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자기 싸는 포장지로 쓰여져 해외에 도자기 수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우키요에 판화들과 같이 유럽에까지 흘러갔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렇게 샤라쿠의 그림이 흘러들어간 것을 발견한 유럽측은 이전 일본에서 받은 평가와는 정반대의 평가를 했다. 독특한 그의 화풍을 유럽인들은 높이 평가했고 화가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도 파리 거주 시절에 우키요에를 접했고 샤라쿠의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도슈사이 샤라쿠의 작품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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