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가다] ④공항에서 호텔까지 곳곳 한국말…"야근할 때가 공부 기회"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5-19 07:58

[쿠바를 가다] ④공항에서 호텔까지 곳곳 한국말…"야근할 때가 공부 기회"


소련 젊은층 일깨웠던 영미 팝 대신 이제 K팝이 쿠바 젊은이들에 '꿈' 심어


韓관광객 한 명도 없는데…공항서 기자 여권 보고 한국말로 "안녕히 가세요"


스트레이키즈가 '쿠바 초통령'…전기 들어오는 호텔 야근 때 한국어 '주경야독'


쿠바 젊은이들 "한국은 로망의 도시…꼭 한번 가고 싶다"


쿠바의 상징 쿠바의 상징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2일 오후 쿠바 시내에 있는 쿠바 국가와 쿠바를 상징하는 조형물

2026.05.12. buff27@yna.co.kr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지난 11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해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입국 심사가 끝나고 아바나 시내로 들어가는 공항 출구에서 펼쳐졌다. 수하물에 불온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려고 공항 직원이 다가와 여권을 보자고 했다. 여권을 건네주니 바로 "아 사우스 코리아…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또렷한 한국어로 답했다. 간단한 인사말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발음이 너무 깨끗했다.


'이역만리 떨어진 쿠바에서?'라는 약간의 의문을 품은 채 휴대전화 개통을 위해 공항 근처 통신사 대리점으로 갔다. 개통을 하던 중 유심 문제가 발생했고, 쿠바에 있는 한국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어로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직원들끼리 스페인어로 속닥거렸다. "한국 사람인가 봐. 신기하네."


이들을 취재하고 싶었지만, 휴대전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정신이 혼미한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에어컨과 인터넷 문제가 발생했다. 불만을 제기하려고 로비에 전화를 걸고 방 번호를 말했더니, 응대하던 여성이 차분히 "직원을 올려보내 주겠다"고 영어로 답한 뒤 곧 태세를 전환했다. "한국분이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어 공부하는 베아트리스입니다."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4일 오후 아바나 국제공항의 모습. 손님들은 거의 없었고, 창구는 텅텅 비었다. 대기 시간은 거의 걸리지 않았다. 2026.05.14. buff27@yna.co.kr


쿠바에 도착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경험한 일들이었다. 도대체 쿠바 젊은이들은 어떻게 한국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것일까. 미국의 봉쇄 전 쿠바의 주력 산업이던 관광업에 종사하려면, 영어, 러시아어, 심지어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관광객을 위해 중국어를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한국 관광객이 거의 전무한, 그래서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많은지 궁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K드라마, K푸드 등 한국 문화가 쿠바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런 문화가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젊은 학생들은 중남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었다. 가장 '힙'한 문화가 한국 문화인 것이다. 심지어 쿠바의 실권자 카스트로 가문 출신 학생들조차도 '스트레이 키즈' 등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부인도 한국 드라마 팬이라는 말이 현지에서 나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그리고 스트레이 키즈처럼 잘 알려진 K팝 그룹은 물론, 우리나라 중소 마이너 소속사 아이돌 그룹까지 여기선 인기다.


텅텅 빈 공항 창구텅텅 빈 공항 창구 (아바나=연합뉴스) 14일 오후 공항 창구는 대부분 닫혀 있었다. 이날 항공편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드문드문 있었고, 개중에는 취소된 편들도 있었다. 2026.05.14. buff27@yna.co.kr


이들 K팝 그룹이 활동하는 한국은 쿠바 청춘들에게 '로망'의 대상이다. 언젠가 꼭 가보고픈 곳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엘레나 디아스(28)는 BTS와 블랙핑크를 통해 K팝을 알게 됐고,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머나먼 동아시아 국가를 동경하게 됐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 초등학생들은 '스트레이 키즈'에 열광한다. 이역만리 쿠바에서도 '초통령'은 K팝 아이돌이다.


BTS로 '입덕'했다가 스트레이 키즈로 갈아탄 '호텔리어' 베아트리스 가르시아는 "'스트레이 키즈'의 현진은 완벽한 아티스트다"라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방탄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스트레이 키즈 팬이다"고 말했다.


'어학 천재'인 그는 모국어 스페인어를 포함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국어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건 한국어라고 한다.


호텔 야근이어서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근무하는 그는 13일 밤은 일이 많지 않아 한국어를 공부할 거라고 했다.


"집에선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오늘처럼 야근할 때가 공부할 좋은 기회지요. 오늘 밤에 열심히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웃음)


"꿈이 있다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정말로요. 한 번도 나라 밖을 나가보지 못했지만, 갈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어요. 가서 스트레이 키즈 공연도 꼭 봤으면 좋겠어요."


쿠바에서 인기있는 '스트레이 키즈'쿠바에서 인기있는 '스트레이 키즈' [AP=연합뉴스]


한국에 가는 건 베아트리스만의 꿈은 아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 대부분의 꿈이다. 5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호세 마르티네스는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 한국어를 공부했으니 한국에서 공부하며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 음식도 너무 맛있다"고 했다.


"어렵지만, 흥미로운 언어인 것 같아요. 한국어는요. 한국 문화도 너무 재밌습니다. 나중에 꼭 한국에 가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호세의 친구인 다니엘 가르시아도 이렇게 말하며 맞장구쳤다.


비틀스 비틀스 [EPA=연합뉴스]


한국 문화에 대한 쿠바 젊은 층의 관심은 놀라웠다. 시대는 다르지만, 이들은 마치 소련 시절에 팝 문화를 탐닉하며 미국을 동경하던 소련 젊은이들과 비슷한 듯했다. 소련 공산주의 체계를 무너뜨린 건 내부 모순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틀스,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 블론디 등 영미 팝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 음악에 담긴 '자유에 대한 갈망'이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듯, 지금은 K팝이 쿠바 젊은이들에게 비슷한 열망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


이들은 암흑 같은 정전 속에서 BTS의 '피 땀 눈물' 같은 노래를 들으며 어려움을 견뎌내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는 피, 땀, 눈물을 흘리며 공부하고 있었고, 호세와 다니엘도 그랬다.


"저뿐 아니라 제 주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 혹은 공부 안 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베아트리스의 말이다.


서울 남산타워서울 남산타워 [연합뉴스 자료]


이처럼 한국을 향한 뜨거운 동경을 품은 쿠바의 젊은 세대를 뒤로한 채 기자는 14일 쿠바에서 나왔다. 쿠바를 빠져나갈 때도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공항 출국 심사관들이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 여권을 들여다보면서 자기네들끼리 '한국 사람'이라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쑥덕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들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그리 낯설거나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는 익숙한 시선을 받으며 출국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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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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