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장학기금' 만든 문헌정보학 선구자…이순자 前교수 별세
2014년 김재익 평전 출판기념회 당시의 고인 [촬영 김도훈] 2014.1.15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사재 20억원으로 서울대에 남편 김재익(1938∼1983)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만든 이순자(李淳子) 전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가 21일 오후 6시 9분께 서울 용산 금강아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2일 전했다. 향년 88세.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고교 불어 강사로 일하다가 남편과 함께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유학한 것을 계기로 도서관학을 공부했다. 1968∼1973년 스탠퍼드대 도서관 사서로 일한 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실 사서(1973∼1975년), 국제경제연구원 자료실장(1976∼1977년)을 거쳐 1977∼2001년 숙명여대에서 도서관학, 문헌정보학을 강의했다. 1989∼1993년 숙명여대 도서관장을 지냈다.
1970년대까지 국내 도서관은 주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보존하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1980년 고인과 신숙원 서강대 영문학과 명예교수가 함께 쓴 책 '도서관과 자료의 활용법'이 나오면서 대학생과 연구자들이 학술 연구에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게 돕는 '이용자 교육'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1998년 개정증보판 '학술정보 활용법'은 '인쇄 매체 중심의 도서관학'이 '디지털·네트워크 중심의 문헌정보학'으로 바뀌는 데 영향을 줬다.
1962년 결혼한 남편 김재익 전 경제수석은 전두환(1931∼2021)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을 들을 만큼 전폭적인 신임 속에 1980년대 경제 구조 전환을 시도했다. 중화학 공업 과잉 투자와 수출 주도 경제의 영향으로 한해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나들던 때 김 전 수석은 '한자릿수 물가', '제로베이스 예산'을 강조하고, 수입자유화·금융실명제·정보기술(IT) 산업 도입 등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뤄냈다. 1983년 10월 9일 북한의 미얀마(버마) 아웅산 테러 당시 순직했다.
고인은
2010년 '김재익 장학기금 협약식' 당시의 고인 [서울대 제공] 2010.12.29했다. 또 "이제 저도 남편 곁으로 갈 날을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요"라며 "윤회설을 믿는다면 한 번쯤 다시 그 사람(남편)과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해로를 해 보았으면 하고 웃지요"라고도 했다.
1991년 김 전 수석 추모 논문집을 낸 데 이어, 1998년 책 '시대의 선각자 김재익'을 썼고, 2010년 12월에는 서울대에 20억원을 쾌척해 '김재익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이었다. 고인은 했다. 서울대는 이 돈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정부 및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서울대에서 각 분야의 전문지식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유족은 2남(김한회<미국변호사>·김승회<데이라이트디자인 파트너>)과 며느리 이수연(미 스탠퍼드대 에이즈연구소 연구원)·이우영(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8호실(22일 오후 3시부터 조문 가능), 발인 24일 오전 7시,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 02-2258-5940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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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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