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위안부피해 2차 진상조사 뒤 日정부 발표…'사과와 반성' 통한 전환점 평가
배상 문제·위안부 규모 적시 안 한 한계…담화 주역 아들 전 외무상은 '망언'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10일 별세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하원) 의장은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과 이송에 개입했으며 그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내용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공식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인물이다.
1993년 8월 4일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전 의장은 한일 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은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를 이른바 '종군(從軍) 위안부'라고 표현했다. 군대를 따라간다는 의미의 '종군'이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인식을 심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쓰지 않고 있다.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신화통신=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담화는 1991년 12월부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대해 장기간,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고 밝혔다.
위안소는 당시 일본군 당국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또 담화는 "위안부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관헌(관공서) 등이 직접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의 생활이 강제적인 상황 아래의 참혹한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담화는 "본 건(위안부 문제)은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의 출신지를 불문하고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사죄했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존재 인정과 배상 문제는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한 이래 1990년대 한일 관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과 재산 청구권에 관한 협약으로 전후 처리 문제가 형식적으로 매듭지어졌지만 새로 대두된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국 정부는 일본 측에 사죄 및 배상을 요구했다.
일본은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발적으로 가담한 행위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그러자 김 할머니 등 피해자 35명이 1991년 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992년 1월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시작됐다.
이어 한일 양국 시민사회계와 국제 사회로부터 비판과 압박이 거세지자 일본 국내에서도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따지기 시작했다.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가 방위청 도서관에서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모집 통제에 관여한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를 발견했고,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총리의 방한 직전인 1992년 1월 11일 이 자료가 아사히 신문에 보도된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 선회 계기로 알려진다.
이틀 후 가토 고이치 관방장관이 "군의 관여를 부정할 수 없다"는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총리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죄했다.
당시 가토 담화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입증하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혀 한국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조선총독부 전 관계자, 위안소 전 경영자, 위안소 부근 거주자, 역사 연구가 등 100여명 등을 대상으로 2차 진상 조사를 진행한 끝에 발표한 것이 고노 담화다.
고노 담화는 치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위안부 동원에 일본 관헌이 관여했다는 점과 강제성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고노담화 주인공이 쓴 '진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은 9일 도쿄에서 일본기자클럽 주최로 열린 전후 70주년 대담에 참가하면서 방명록에 '진실(사진)'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정부가 관여했음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한 그는 '진실'이라는 말을 택한 데 대해 "사실과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어떤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거나 부정하는 것, 다른데서도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일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2015.6.9
jhcho@yna.co.kr
하지만 자료 부족을 이유로 전체 위안부의 숫자를 밝히지 않고 배상 문제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는 등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고노 담화 발표가 나온 지 약 20년 뒤인 2014년 역사 인식에서 우익 성향을 보인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한국 측 요구에 의해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며 담화의 진정성을 깎아내리려고 시도했다.
지난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징용 관련 강제성을 희석하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자 한국 정부가 항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노 담화가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고 천명했지만, 담화 발표 뒤 30여년 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오락가락한 셈이다.
이날 별세한 고노 전 의장의 아들은 일본 외무상을 지낸 고노 다로 전 의원으로 외무상 시절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문제 등에서 한국을 비판하거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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