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렬사
경상남도 진주성 안에 자리한 창렬사는 단순한 사당이 아니다. 이름을 기리는 장소라기보다, 끝내 물러서지 않았던 선택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彰烈’—드러낼 창, 매울 렬.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할 뜨거운 결기. 그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는 패배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은 무너졌으되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고, 살아남음보다 지켜냄을 택한 이들이 있었다. 창렬사는 바로 그 선택의 무게를 모신다. 패전의 자리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진 것은, 인간이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 사당을 처음 세운 이는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였다. 이후 선조 40년, 왕으로부터 이름을 받는 ‘사액’을 통해 국가의 기억으로 격상된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나 보존만을 허락받는 것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 이곳 역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럼에도 흩어졌던 기억은 다시 모였고, 충절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지워질 뻔한 흔적일수록, 다시 새겨질 때 더 깊어진다.
제장군졸지위장수와 군졸들을 함께 기리는 비석
이곳에는 김시민을 비롯한 39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그러나 숫자는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다. 죽음을 각오한 선택 앞에서 개인은 더 이상 한 사람으로 남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기준이 되고, 하나의 물음이 된다. 우리는 그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비추어보게 된다.
창렬사의 건물들은 고요하다. 정전과 동서무, 경충당과 비각 이름들은 단정하지만, 그 안에 깃든 시간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목재와 돌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결심의 순간, 물러설 수 없었던 마음의 방향 같은 것들이다.
유충문
우리는 자주 묻는다. 기억은 왜 필요한가. 그러나 창렬사는 답하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같은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더 쉽게 물러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은 과거를 붙드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태도를 세우는 기준이라는 것을.
이곳은 과거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을 위한 공간이다. 오래된 이름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순간에, 무엇을 지키기 위해 서 있을 것인가.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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