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문학 100년의 발자취, ‘동인’의 이름으로 다시 만나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10-12 19:59

대구문학관, 16일부터 기획전 ‘100년의 숨결 : 대구, 동인’ 개최

『거화』에서 『죽순』 『분단시대』까지… 근대문학과 청년 문학동인의 역사 조명

고교 문학동인 출신 문인들 함께하는 ‘홈커밍데이’로 개막

근대문학 형성기인 191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문학동인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기획전 ‘100년의 숨결: 대구, 동인’을 개최한다.(사진=대구문학관 제공)

한 권의 동인지에는 한 시대의 문학이 숨 쉬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문학청년들이 모여 시를 쓰고 소설을 발표하며 새로운 문학의 길을 모색했던 흔적이다. 때로는 문학적 이상을 공유하고, 때로는 시대의 모순에 맞서며 자신들의 언어로 세상을 기록했던 대구 문인들의 100년 발자취가 한자리에 펼쳐진다.


대구문학관(관장 하청호)은 오는 16일부터 우리나라 근대문학 형성기인 191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문학동인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기획전 ‘100년의 숨결: 대구, 동인’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개별 문인의 작품 세계를 넘어 문학적 지향을 공유한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함께 쓰고 읽으며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만들어왔는지 살펴보는 자리다. 특히 대구 근대문학의 태동과 해방 이후 지역 문단의 형성, 1960~80년대 학생 문학동인의 활동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는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인 ‘그 처음의 문장들’에서는 1910~193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이른바 ‘동인지 시대’를 만난다.


1917년 현진건·이상화·이상백·백기만 등이 뜻을 모아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거화』를 비롯해 『창조』, 『폐허』, 『장미촌』, 『백조』, 『금성』 등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동인지들이 소개된다.


특히 『거화』는 대구 근대문학의 출발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현재 실물은 확인되지 않지만 백기만의 기록을 통해 그 존재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한국 근대문학을 이끌었던 문인들이 청년 시절부터 문학적 이상을 공유했다는 사실은 대구가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한 토양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동인지는 단순한 작품 발표 지면이 아니었다. 문학을 계몽과 교훈의 수단에서 독립된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개인의 감정과 욕망, 내밀한 경험을 새로운 문체와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실험의 장이었다.


두 번째 공간 ‘문학의 장, 삶의 장’에서는 해방 이후 대구 문단을 형성하고 성장시킨 문학동인들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1946년 대구에서 창간된 『죽순』을 비롯해 『시와시론』, 『달뜨는 마을』, 『낙강』, 『에스프리』, 『자유시』, 『문학 경부선』, 『형상』, 『분단시대』, 『오늘의 시』 등 다양한 동인지와 관련 자료가 관람객을 맞는다.


『죽순』은 해방 직후 대구 문단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대표적인 문예지다. 시를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소설과 수필, 평론, 희곡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지역 문학의 지평을 확장했다.


6·25전쟁 당시 대구에 모인 문인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시와시론』 역시 주목할 자료다.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에도 문학적 교류를 이어갔던 문인들의 발자취를 통해 전후 대구 문단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후 1960~80년대에 등장한 여러 문학동인은 저마다의 미학적 지향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대구 문학의 다양성을 넓혀갔다. 동인지는 신인을 발굴하는 통로이자 문학적 논쟁과 교류의 무대였으며, 지역 문학의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산실이기도 했다.


당시 대구고교 문학동인은 교실과 도서관, 학교 문예반 등에서 출발했지만 활동의 의미는 학교 울타리에 머물지 않았다.(사진=이하석 시인 제공)세 번째 공간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1960~80년대 대구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활동했던 학생 문학동인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륜고의 ‘씨알’, 경북고의 ‘돌탑’, 능인고의 ‘보리수’, 대구고의 ‘계단’, 계성고의 ‘근일점’, 대건고의 ‘태동기’ 등 당시 대구 고교 문학동인들의 자료가 소개된다. 대학 문학동인과 시화전 자료도 함께 전시된다.


이들 학생 문학동인은 교실과 도서관, 학교 문예반 등에서 출발했지만 활동의 의미는 학교 울타리에 머물지 않았다.


습작한 시를 서로 돌려 읽고, 작품을 합평하고, 어렵게 동인지를 발간했던 경험은 훗날 지역 문단을 이끌어갈 문학적 자양분이 됐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 청년 문학인들은 인간소외와 사회적 불평등, 개인의 실존적 고민을 문학 안으로 끌어들였다. 현실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과 새로운 언어에 대한 실험은 학생 문학동인을 단순한 습작 모임 이상의 문학 공동체로 성장시켰다.


이번 전시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문학적 관계와 연대의 역사다.


한 사람의 뛰어난 작가가 문학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작품을 읽고 비평하며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북돋웠던 공동체의 힘이 대구 문학 100년을 지탱해왔다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동인지와 문집, 사진, 시화전 자료, 각종 리플릿 등 당시 문학 활동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소개된다. 오늘날에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문학동인의 기록을 통해 시대마다 달라졌던 문학적 고민과 청년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하청호 대구문학관장

하청호 대구문학관장은 “시대는 달라졌지만, 문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는 청년의 열정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번 전시가 지난 시대 청년 문학인들의 꿈과 이상을 되새기는 자리를 넘어, 오늘의 청년들이 자신의 시대를 성찰하고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16일 오후 3시 고교 문학동인 출신 문인들과 지역 문학인들이 함께하는 ‘홈커밍데이’ 행사로 막을 올린다. 오랜 세월을 건너 다시 만난 문학청년들이 당시의 기억과 문학적 열정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때 누군가의 책가방 속에 들어 있었을 얇은 동인지 한 권, 교실 벽에 걸렸던 시화 한 장이 이제 대구 문학의 역사를 증언하는 기록으로 돌아왔다.


100년 전 청년들이 품었던 문학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남긴 문장과 이름, 함께 쓰고 읽었던 시간은 오늘의 대구 문학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전시 관련 문의는 대구문학관 운영팀(053-421-1231~2)으로 하면 된다.


우리나라 근대문학 형성기부터 1980년대까지 지역 주요 동인과 학생 문학동인 활동 등 청년 문학이 지닌 시대적 이상과 열정을 돌아보는 기획전시 ‘100년의 숨결: 대구, 동인’전 오픈 및 홈커밍데이 초대장(사진=대구문학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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