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세미나서 AI 시대 검증 한계 지적…진위 확인해도 불신 지속
정치 양극화에 팩트체크 정당성도 위협…"검증 과정 공개해야"
(왼쪽부터) 개빈 팽 ABC 편집국장, 카녹폰 프라싯폰 태국공영방송 디지털미디어 국장, 조지 사전트 로이터 글로벌 영상검증·뉴스수집 에디터, 스테파니 버넷 로이터 팩트체크총괄이 스테파니 버넷 로이터 팩트체크총괄서 패널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촬영 권하영]
(서울=연합뉴스) 권하영 기자 =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 영상과 실제 영상이 뒤섞이면서 언론이 철저한 검증을 거쳐도 대중의 불신을 해소하기 어려운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한국에서는 팩트체크 저널리즘 자체의 정당성마저 공격받고 있어, 검증 역량 강화와 함께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지 사전트 로이터 글로벌 영상검증·뉴스수집 에디터는 13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에서 로이터 주최로 열린 '뉴스의 미래 서울' 세미나에서 AI 시대 팩트체크의 한계와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이같이 밝혔다.
사전트 에디터는 "AI로 만든 영상과 실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구분 없이 동시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 아예 무엇도 믿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검증 정확도 넘어 대중에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
사전트 에디터는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산사태 영상의 진위를 검증한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지질조사국이 발표한 지진 발생 시각과 위성사진, 구글어스의 지형 정보를 교차 대조해 영상의 진위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처럼 여러 정보를 동원해 검증했음에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높은 수준으로 검증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가짜라고 말하는 게 현실"이라며 "검증 내용을 일반 대중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지가 언론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호주 공영방송 ABC의 개빈 팽 편집국장은 전담 검증팀인 'ABC Verify'의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호주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 관련 영상을 검증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온라인 양식으로 목격 정보를 수집해 공식 발표 내용 일부를 반박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팽 국장은 테러 공격 당시 유포된 가짜 이미지를 판별하고, 선거 기간 확산한 여론조사 결과의 사실관계를 검증해 유권자에게 설명한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언론이 어떤 기준으로 내용을 확인했는지 설명함으로써 우리 콘텐츠를 기준에 맞지 않는 AI 생성물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국공영방송(Thai PBS)의 카녹폰 프라싯폰 디지털미디어 국장은 AI를 뉴스 제작과 데이터 분석에 활용하는 동시에 허위 정보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AI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 정책 문서도 마련하는 등 내부 체계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프라싯폰 국장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개인화 알고리즘이 이용자 경험을 높일 수 있지만, 재난이나 선거 결과처럼 공공성이 중요한 정보는 편집진이 직접 선정한 콘텐츠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널들은 언론이 검증 결과만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증 과정을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신뢰 회복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전트 에디터는 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과정에서 언론사의 검증 내용이 독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못하는 구조가 신뢰 공백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팽 국장도 "우리가 어떻게 검증했는지, 저널리스트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는 투명성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SBS 기자가 13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에서 로이터 주최로 열린 '뉴스의 미래 서울'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촬영 권하영]
이경원 SBS[034120] 기자는 AI와 정치적 양극화 시대의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주제로 발표하며 허위 정보의 양적 증가뿐 아니라 팩트체크를 둘러싼 인식의 문제에도 주목했다.
이 기자는 '가짜뉴스'를 기사 형식을 갖추면서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 '장르로서의 가짜뉴스'와 특정 언론사나 기자를 향해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고 낙인찍는 '라벨로서의 가짜뉴스'로 구분했다.
그는 "AI가 정보 생성 비용을 사실상 0으로 수렴시키면서 장르로서의 가짜뉴스가 급증했다"며 "인간의 팩트체크만으로는 허위 정보가 확산하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가운데 한국 언론의 검증 활동이 정치인 발언에 편중돼 있고, AI 생성 콘텐츠를 판별하는 역량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라벨로서의 가짜뉴스'는 정치적 양극화와 맞물려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가짜뉴스라는 이 무기화된 용어에 대한 재정의부터 시작해야 뉴스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