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 산책 11] 절의의 바람이 머무는 곳, 함안 서산서원과 어계 조려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0-24 10:21

-청암 배성근


원함안 군북 서산 서원(西山書院)


왕조가 바뀌어도 한 사람의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권력이 부르는 자리를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선비가 있었다. 벼슬과 명예보다 마음속에 품은 의리를 앞세웠던 사람, 조선 전기의 생육신 어계(漁溪) 조려(趙旅, 1420~1489)다.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는 그의 삶과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서산서원과 채미정, 어계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단순한 문화유적 답사가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았던 선비의 선택을 돌아보고,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는 향토사 산책이다.


조려가 살았던 15세기 조선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격변을 겪었다. 문종의 뒤를 이어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정국은 크게 흔들렸다. 1455년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세조가 즉위하자 조정의 신하들은 저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새 권력에 참여해 관직을 이어간 이들이 있었고, 단종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며 벼슬을 멀리한 이들도 있었다.


조려는 후자의 길을 택했다. 함안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고 성균관진사가 되었던 그는 세조의 즉위 이후 관직을 멀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함안에서 은거하며 학문과 자연 속에 삶을 맡겼다. 그의 선택을 오늘날의 관점만으로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당시의 정치적 질서와 유교적 명분, 신하로서 지켜야 한다고 여긴 의리를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출세를 위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보다 신념에 따른 길을 선택한 인물로 후대에 기억되었다는 사실이다.


조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먼저 서산서원을 만나게 된다. 서산서원은 숙종 29년인 1703년, 조려를 비롯한 생육신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생육신은 조려와 김시습, 이맹전, 원호, 성담수, 남효온을 일컫는다. 이들은 단종 폐위와 세조 즉위 이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켰으며, 후대에는 권력의 변화 속에서도 의리를 중시한 선비들로 추숭되었다.



서산서원 홍살문


서산서원은 건립된 지 10년 뒤인 1713년 사액을 받았다. 그러나 서원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고종 때인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 조려의 후손과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현재의 서산서원은 1980년대에 복원된 공간으로, 옛 서원의 역사와 후대의 보존 의지가 함께 담겨 있다. 건물이 한때 사라졌어도 그곳에서 기리던 인물과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원 안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제향 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원은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대에 그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강학의 공간과 제향의 공간이 함께 자리한 서산서원에는 선비를 기억하는 방식과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려 했던 사람들의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곳에서 읽어야 할 것은 오래된 건축물의 모습만이 아니다. 어떤 삶을 본받을 만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 가치를 어떻게 이어가려 했는가 하는 역사적 물음이다.


서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채미정이 있다. 조려의 은거 정신을 상징하는 정자로 알려진 이곳은 이름부터 의미심장하다. 채미(採薇)는 고대 중국의 백이와 숙제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채미는 부당하다고 여긴 권력에 협력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삶의 상징이 되었다.


채미정이라는 이름에는 조려의 삶을 바라본 후대 사람들의 평가가 담겨 있다. 자연 속에 자리한 정자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소박함은 오히려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에는 권력을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도 있지만,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는 길도 있다. 조려의 은거는 후대 사람들에게 그 두 번째 길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물론 조려의 삶을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 그대로 겹쳐 놓을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시대와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채미라는 이름을 통해 후대 사람들이 조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렸는지는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 서면 절의란 단지 굳은 표정으로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태도임을 생각하게 된다. 발걸음을 옮겨 어계생가를 찾아가면 역사 속 인물 조려가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생가는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지역적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유적이다. 역사책에서는 흔히 인물의 이름과 업적, 충절과 학문을 먼저 접하지만, 그 역시 특정한 땅에서 태어나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살아간 한 인간이었다.


함안이라는 고향은 조려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머물며 생을 마쳤다. 그가 남긴 삶의 자취를 고향 사람들이 기억하고, 후손들이 기록과 유적을 통해 전해 왔다는 점에서 어계생가는 한 개인의 생애와 지역의 역사가 만나는 장소다. 생가와 채미정, 서산서원을 함께 둘러보면 인물의 삶과 그를 기리는 후대의 기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옛 서산서원 터로 알려진 원동재 역시 눈여겨볼 곳이다. 서산서원이 훼철된 뒤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기까지는 장소의 변화와 역사적 단절이 있었다. 원동재는 이러한 변천을 생각하게 하는 흔적이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오늘날 남아 있는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옛터와 기록, 전해 내려오는 기억, 유적을 지키려 노력한 사람들의 시간도 문화유산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처럼 함안의 생육신 유적은 서로 다른 장소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어계생가는 조려의 삶이 시작된 자리를 보여주고, 채미정은 그의 은거와 절의를 상징한다. 서산서원은 조려와 생육신을 기리려 했던 후대의 뜻을 전하며, 원동재는 유적의 변천과 보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곳들을 함께 돌아보는 일은 함안의 향토사를 인물과 공간, 기억과 전승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과정이다.


특히 서산서원의 역사는 역사적 기억이 저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려가 세상을 떠난 뒤 200여 년이 지나 서원이 건립되었고, 훗날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조려의 행적이 후대에 정비되고 널리 기려진 과정에는 후손과 지역 유림의 활동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후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시대의 질문과 가치관 속에서 과거를 다시 해석하고 기억한다.


그렇기에 향토사를 살피는 일에는 유적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어떤 기록을 통해 전해졌는지, 특정 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역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을 오늘날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서산서원과 생육신 유적은 과거의 충절을 기리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역사와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려주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오늘날 조려의 삶을 돌아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선비가 지켰던 의리를 지금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이나 이익 앞에서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는 태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마음, 그리고 당장의 성과보다 오래 지켜야 할 가치를 생각하는 자세는 시대를 넘어 되새길 만하다.


향토사는 멀리 있는 역사가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골목과 마을, 오래된 집과 정자, 이름 없이 남은 터에도 역사의 시간이 스며 있다. 함안의 서산서원과 채미정, 어계생가를 거니는 일은 한 선비의 생애를 통해 지역의 과거를 만나고, 그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묻는 일이다. 고요한 정자에는 바람이 지나고, 서원의 마당에는 계절이 머문다. 오래된 건물은 말이 없지만 그곳을 지켜 온 사람들의 마음은 유적 곳곳에 남아 있다. 조려가 선택한 은거의 길과 그를 기억한 후대의 노력은 함안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향토사를 산책한다는 것은 결국 땅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읽는 일이다. 함안의 생육신 유적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한 시대의 충절만이 아니다.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을 기억해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이다. 그 질문을 마음에 담고 돌아서는 순간, 향토사의 길은 지나간 역사를 넘어 오늘의 삶으로 이어진다.



배성근(시인.수필.소설.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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