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정법 사과’와 ‘바라시니 사과’, 정치인의 진정성 없는 사과가 남긴 씁쓸함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10-24 22:42


 ‘가정법 사과’와 ‘바라시니 사과’, 정치인의 진정성 없는 사과가 남긴 씁쓸함





최근 정치권을 비롯한 공인들의 실언(失言)과 그에 따른 해명이 사회적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직과 정계를 두루 거친 중견 정치인이 내놓은 이른바 ‘가정법 사과’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어휘의 사용은, 사과의 본질을 훼손하는 나쁜 선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짙은 우려를 자아낸다.

사과(謝過)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면피용 요식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행한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의 피해자에게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하는 고도의 도덕적 행위다. 따라서 진정한 사과에는 조건이 붙지 않으며, 변명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논란이 된 사과문은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리고, 사과를 바라시니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는 전형적인 ‘가정법 사과’의 단골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지만, 당신들이 그렇게 받아들여 상처를 입었다면 유감’이라는 식의 태도는, 잘못의 원인을 발화자가 아닌 수신자의 오해나 과민 반응으로 전가하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뒤이어 붙은 “사과를 바라시니 사과한다”는 표현은 도저히 납습하기 어려운 오깃장이자, 사과의 진정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자기 파괴적인 발언이다. 이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여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라, 등 떠밀려 마지못해 사과한다는 식의 거부감과 오만을 여실히 드러낸다. 6선 의원에 여당 대표,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국정의 책임자급 인사가 내놓은 사과라고는 믿기 힘든 최악의 형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자 책임의 무게를 담는 그릇이다. 특히 소방 공무원들의 처우나 예산과 관련된 공적 논쟁의 자리에서 나온 실언이었다면, 그 상처를 보듬는 과정 역시 극도로 정중하고 사려 깊었어야 했다. 큰 뒤탈이 날지 몰랐다면 공적 언어에 대한 지능의 문제요, 알고도 이 같은 어깃장 섞인 사과를 남발했다면 대중과 피해자를 기만하는 태도의 문제다.

정치인의 잘못된 사과 행태는 단순히 개인의 명예 실추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공적 불신을 깊게 만든다. 여론에 기름을 붓는 나쁜 사과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공인들은 고개를 숙일 때 변명과 조건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정치권은 무겁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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