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이혼] 이대로 좋은가 ―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10-25 09:30



이혼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혼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예전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황혼 이혼이 이제는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려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이혼 건수는 약 9만1천 건으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혼인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은 전체의 36.2%를 차지했다. 30년 이상 함께 살아온 부부의 이혼도 16.6%에 이른다.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왜 황혼의 문턱에서 갈라서는 것일까.


사람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가정폭력이나 오랜 갈등처럼 더 이상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고,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경제 문제, 자녀 문제, 성격 차이 등이 뒤늦게 표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황혼 이혼을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볼 일은 있다.

조금만 일찍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했다면, 이혼이라는 마지막 선택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을 가정은 없었을까.


황혼 이혼을 부르는 다섯 가지 이유


첫째, 오랜 세월 쌓인 갈등과 감정의 골이다.

젊을 때는 자녀를 키우고 생계를 꾸리느라 덮어두었던 문제가 자녀가 독립한 뒤 한꺼번에 드러나는 경우다.


둘째, 부부간 대화의 단절이다.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묻지 않고, 상대의 생각보다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면 부부는 어느 순간 가장 가까운 타인이 되고 만다.


셋째, 경제 문제와 재산 문제다.

노후에는 소득이 줄고 재산과 상속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돈의 사용과 관리 방식이 서로 다르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넷째, 가사와 돌봄의 불균형이다.

특히 오랜 세월 한쪽이 가사와 가족 돌봄을 도맡았다고 느끼면, 자녀가 성장한 뒤 그동안의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


다섯째,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의 소멸이다.

부부라는 이유로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도 세월과 함께 메말라갈 수 있다.


황혼 이혼을 피하려면


부부라고 해서 생각까지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혼이다.

입속의 혀도 가끔은 이빨에 깨물리는데, 서로 다른 성격과 환경을 가진 사람이 만나 어찌 평생 불협화음 한 번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는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풀 줄 아는 부부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내 방식대로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서로의 수고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당신이 고생 많았소.”

“고맙소.”

“내가 미안했소.”

부부 사이에서 이런 짧은 말 한마디가 때로는 큰 싸움을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또한 자녀가 성장했다고 부부의 인연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녀를 떠나보낸 뒤부터가 진짜 부부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함께 산책하고, 여행하고, 취미를 나누고,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참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조건 참고만 살아서는 안 된다.

상처를 참고 덮어두는 것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대화로 풀고, 반복되는 심각한 갈등은 가족상담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다만 폭력이나 심각한 학대처럼 안전과 존엄을 위협하는 문제라면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혼인 서약을 할 때 흔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말을 한다.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은 세월의 순리다.


그러나 머리가 희어지는 동안 부부의 마음까지 희어져 버려서는 안 된다.

젊은 날에는 사랑으로 살고,

중년에는 책임으로 살며,

노년에는 정과 의리로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길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를수록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오래된 사랑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조금 서운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화가 나도 한마디 덜하고,

상대가 잘한 것은 크게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한 번쯤 눈감아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웬만하면 이래저래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화목의 지름길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한 걸음씩 양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황혼은 인생의 끝자락이 아니다.

어쩌면 부부가 다시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오늘 먼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오늘 먼저 내미는 손 한 번,

그리고 평생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건네는

“여보, 당신과 함께 살아와서 참 고마웠소.”

그 한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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