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공주서 스토킹 신고 뒤 '처벌 불원' 밝힌 여성들, 수 개월뒤 끝내 가해자에 숨져
"위험신호 개입 충분치 않아…강력범죄 전조단계 인식하고 '처벌불원' 사유 적극적 파악해야"
대전경찰청 전경 [촬영 이주형]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스토킹·폭행 신고가 이뤄졌지만 피해자 측의 '처벌 불원'으로 불송치 등의 조치가 내려졌다가 수 개월 뒤 해당 가해자에게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관계성 폭력 범죄를 교제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징후로 보고,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의무적 체포'라는 강력한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스토킹 신고 후 '처벌불원'에 불송치…'살인 사건'으로 귀결
25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께 대전 중구 한 주택에서 40대 여성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사건 17시간 40분 만인 이날 오전 7시 40분께 강릉에서 A씨와 연인관계였던 40대 남성 B씨를 살인 혐의로 검거했다.
A씨는 약 1년 전인 지난해 10월 10일 B씨가 문자·전화 등을 한다며 112에 스토킹 신고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경찰은 접근과 연락을 금지하는 긴급응급조치 1·2호를 결정했고, A씨에게 스마트 워치를 지급했다.
그러나 20여일 뒤 A씨는 경찰에 직접 찾아가 화해했다며 B씨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수사를 계속한 경찰은 B씨 행동이 지속적·반복적인 스토킹으로 보기 어렵다며 11월 25일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했다.
지난해 12월 말에도 다툼으로 112 신고가 이뤄졌지만,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중 신고했다"고 경찰관에게 사과했고 피해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 현장에서 종결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비슷한 사례는 최근 충남에서도 발생했다. 지난 13일 아산의 한 국도변에 있던 차량 조수석에서 여성 C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운전석에는 전 연인인 D씨가 음독한 채로 있었다.
경찰은 D씨가 C씨를 살해하고 음독한 것으로 보고 수사했다. 그러나 9일 만인 지난 22일 D씨가 숨지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했다.
이 사건 9개월 전 스토킹 신고가 있었다. C씨는 지난 1월 "전 남자친구가 쫓아다닌다"며 D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사안이 경미하고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해 현장 종결했다.
신고 다음 날 C씨를 상대로 안전 확인을 했으나 역시 사건 접수나 안전 조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지난 6월에도 두 사람과 관련된 폭행 신고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C씨가 처벌과 안전조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 불송치됐다.
그러나 C씨는 결국 가해자로 지목했던 남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언론에 "대상자들이 사건 처리와 보호조치 등을 원하지 않았고, 6월 신고 이후에는 경찰에서 위험성을 인식할 수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경찰 견장 [연합뉴스TV 제공]
◇ "교제 폭력, 잠재적 강력범죄 전조 단계로 인식해야…처벌불원 사유도 파악 필요"
전문가들은 반복적인 연인 간 스토킹·폭력 신고를 위험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2019∼2024년 확정된 형사 판결문 201건을 분석해 발간한 '교제 살인의 양상 분석 및 정책 방향 설정' 보고서에 따르면 교제 살인 피해자의 89.9%가 여성이었다.
사건 발생 이전 단계에서 강압적 통제, 대인관계 차단, 강박적 집착, 스토킹, 신체적 폭력, 흉기 위협 등 다양한 심리적·행동적 위험 지표가 일정한 비율로 나타나는 특징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교제 살인이 단순한 우발적 폭력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전조 신호와 행동적 위험 지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계성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공적 대응 체계가 이런 위험을 충분히 조기에 탐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선 경찰관의 대응 일관성을 높이는 동시에 교제 폭력 사건을 단순한 관계 갈등이 아닌 잠재적 강력범죄의 전조 단계로 인식하도록 하는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동일 가해자와 동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위험 이력 관리 체계 강화, 반복 사건에 대한 단계적 대응 프로토콜 도입, 누적 위험 신고 추적·평가 구조 마련 등을 제안했다.
국내 최초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범죄학 논문을 발표했던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역시 동일한 관계에서 비슷한 사안이 반복된다면 경미한 사건도 중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박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스토킹이나 교제 폭력 양상이 보였다면 현 단계에서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상관없이 외부의 도움을 받기 시작해야 한다"며 "경찰 단계의 위험성 평가가 사건을 종결할 때 선택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가해자의 위험성을 놓치는 현상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피해 여성들이 가해자와의 관계가 종속적일 경우 또는 헤어지기 위해 처벌불원을 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이 처벌불원 사유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과거보다 처벌이 강화하고 다양한 긴급·임시 조치가 취해지는데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시행하는 '의무적 체포'가 강하게 시행돼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