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천천히 익어가는 삶의 빛을 노래하다 권경자 첫 시집 『푸른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성연출판사 출간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11-03 00:45

- 배성근

시집 푸른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저자 권경자 시인


울산에서 활동하는 권경자 시인이 첫 시집 『푸른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를 성연출판사에서 펴냈다. 성연 시인선 35번째 책인 이번 시집은 247쪽에 8부의 시와 9부의 시평을 담았다. 권경자의 시는 특별하고 거창한 소재보다 자연과 가족, 사랑과 그리움, 계절과 일상에서 출발한다. 꽃과 바람, 비와 햇살, 초록과 들판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는 시적 매개가 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지나온 시간과 가족에 대한 기억, 사랑과 상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권경자 시인


「엄마의 빈 자리」와 「아버지의 딸」은 가족에 대한 시인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떠난 어머니는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로 남는다. 특히 아버지를 ‘동아줄’에 비유한 표현은 가족이라는 존재가 삶에서 얼마나 깊은 버팀목이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칠월의 사랑」, 「사랑의 단비」, 「사랑의 향기」에서는 자연의 변화에 사랑과 이별, 그리움의 감정을 포개 놓는다. 꽃과 비, 향기와 계절이 지나간 사람과 시간을 불러내면서 자연과 인간의 내면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표제작 「푸른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시집의 중심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 푸른 나무가 하루아침에 숲이 되지 않듯 사람의 삶 역시 서두른다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는 삶보다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며, 남보다 앞서가는 것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끝까지 푸름을 지켜가는 것이 삶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감사의 바람」에서는 작은 감사가 평범한 하루를 빛나게 하는 순간을 노래하고, 「앎이 길을 나설 때」에서는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 놓인 거리를 돌아본다. 「바람개비는 바람을 모른다」와 「삶의 정원사」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가는 자세를 성찰한다.


시집의 마지막 9부에는 배성근 시인·소설가·평론(비평) 칼럼리스트의 시평 「자연이 마음에 피워 올린 사랑 — 권경자 시인의 시 세계를 중심으로」 가 실렸다. 배성근 평론가는 권경자의 시 세계를 “자연에서 시작하여 마음으로 들어가고, 기억을 지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자연과 인간의 마음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일상의 풍경이 삶의 의미를 묻는 시적 언어로 바뀐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을 다룬 작품에서는 상실과 기억, 사랑의 관계에 주목한다. 「엄마의 빈 자리」의 어머니는 부재한 존재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랑이며, 「아버지의 딸」의 아버지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삶의 버팀목으로 형상화된다.


배성근 평론가는 권경자 시인의 장점뿐 아니라 앞으로의 문학적 과제도 함께 짚는다. 익숙한 사랑과 그리움, 꽃과 바람, 햇살과 별 등의 서정적 소재를 넘어 보다 낯선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를 찾아간다면 시 세계가 한층 깊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좋은 시는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데서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풍경에서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건져 올릴 때 깊어진다는 의미다.


『푸른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라는 결국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잠시 걸음을 늦추게 하는 시집이다.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고, 지나간 사랑을 돌아보며, 잊고 지냈던 계절과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시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나무가 천천히 푸르러 숲이 되듯 사랑도, 기억도, 삶도 시간을 견디며 깊어진다는 사실을 시로 보여준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작은 감정과 기억들이 독자의 마음에 새로운 푸름으로 남는다.


첫 시집 『푸른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성연출판사 자체 인터넷서점 ‘성연책방’에서 판매 중이다. 권경자의 시가 독자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작은 쉼이 되기를 기대한다.


                                         배성근(시인.수필. 소설.평론(비평).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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