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도저의 영면, 여야가 함께 기억해야 할 민주주의의 거목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10-28 23:05


불도저의 영면, 여야가 함께 기억해야 할 민주주의의 거목





한 시대의 장엄한 막이 내렸다.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분신이자 ‘영원한 동지’, 김동영 전 장관과 함께 상도동계를 이끌며 한국 정계를 호령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호 온산(溫山)처럼 주변을 따뜻하게 품으면서도 거대한 산과 같았던 존재, 동시에 민주화와 국가 개혁을 위해서라면 불도저처럼 거침없이 전진했던 거인의 퇴장은 우리에게 깊은 상실감과 함께 묵직한 과제를 남긴다.

최형우의 정치는 한마디로 ‘목숨을 건 헌신’이자 ‘신의(信義)의 정치’였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대표로 나섰던 그는 평생을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데 바쳤다. 박정희 유신 정권 시절 대정부 질의에서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했다가 남산과 서빙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5·17 비상계엄 직후에도 또다시 연행되어 고초를 겪으며 의원직까지 강탈당했다. 이 같은 모진 탄압 속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았던 그의 기개는 상도동계의 행동대장이자 YS의 가장 든든한 날개로 발현되었다. 1985년 2·12 총선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간사장으로서 동료들을 돕느라 정작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지 못해 낙선하면서도 “대의가 먼저”라며 웃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자신의 안위와 권력보다 동지와 조직, 그리고 대의를 먼저 생각했던 그의 뚝심은 오늘날 이기적 셈법에 매몰된 현대 정치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긴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그의 불도저식 추진력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과감한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최대의 난제였던 군부 사조직 ‘하나회 해체’ 과정에서 최형우는 YS의 전격적인 결단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한 ‘개혁의 보루’이자 총대였다. 군부가 언제든 반발해 쿠데타나 군사 정변을 획책할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고인은 정권 초기의 막강한 정치적 돌파력을 결집해 군부 숙청의 정치적 안전판 역할을 해냈다. 이처럼 그가 목숨을 걸고 다져놓은 확실한 문민통제의 기반 위에서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정착 등 역사적인 대개혁들이 비로소 중단 없이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행정가이자 정치인으로서 그가 고향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단연 ‘울산광역시 승격’이다. 내무부 장관 시절이던 1995년, 고인은 특유의 뚝심으로 울산시와 울주군의 도농 복합도시 통합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이는 광역시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인구 및 인프라 주춧돌이었다. 이어 1996년 여야의 극심한 대치 속에서도 신한국당 상임고문으로서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 ‘울산광역시 설치 법안’의 국회 통과를 이끌어냈다. 당시 그가 중앙정치권에서 거대한 버팀목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울산의 독립적인 도약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역사적 평가다. 비록 1997년 봄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중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해 7월 울산이 광역시로 웅비하는 역사적 순간을 병상에서 맞이해야 했지만, 오늘날 울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산업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고인의 지극한 ‘울산 사랑’과 백년대계를 내다본 헌신이 있었다.

특히 그의 영결식 풍경은 오늘날 극단적 진영 갈등으로 얼룩진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야 지도부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한목소리로 그를 추모했고, 전·현직 정관계 인사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부마민주항쟁과 5·18 정신을 잇는 민주화의 뿌리는 여야를 넘어선 공통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정치권의 고백처럼, 최형우라는 이름 석 자 앞에서는 진영의 높은 벽이 일순간 허물어졌다.

오늘날의 정치는 어떠한가. 타협 없는 대치와 혐오의 언어가 국회를 지배하고, 대화와 상생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이러한 시점에 “니 내 놔두고 그럴끼가”라며 YS와 평생의 신의를 지켰던 최형우의 의리, 그리고 목숨 바쳐 민주주의와 국가 개혁의 기틀을 닦았던 그의 올곧은 신념은 우리에게 시급한 각성을 요구한다.

고인은 국립4·19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거인의 불도저는 멈추었지만, 그가 개척해 놓은 민주주의와 국가 개혁의 길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제 남아있는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고인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어받아, 진영을 넘어 민생과 국가 개혁을 위해 함께 성찰하고 협치하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위대한 거인, 최형우 전 장관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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