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럼] 약탈 없는 광장, 파괴 없는 저한,프랑스의 ‘카타르시스’와 한국의 ‘도덕적 연대’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10-28 12:26



약탈 없는 광장, 파괴 없는 저한,프랑스의 ‘카타르시스’와 한국의 ‘도덕적 연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군중의 시위를 단순한 폭동이 아닌, 지배층이 사회적 묵계를 깨뜨렸을 때 일어나는 일종의 ‘민중적 정의(Popular Justice)’ 실현으로 보았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주권을 선언한다는 본질에서 프랑스의 거리와 한국의 광장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저항이 표출되는 방식, 특히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시민들의 ‘사회적 윤리’와 ‘개인의 도덕성’을 현미경 아래 올려놓으면 두 사회가 내재화한 문명의 결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의 시위문화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파괴적 카타르시스에 기반한 혁명적통을 따른다면, 한국의 시위문화는 고도의 공동체적 유대감과 자정(自淨) 능력을 바탕으로 한 ‘상생의 도덕적 연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프랑스의 저항 정신은 1789년 대혁명 이래로 “국가는 시민이 언제든 전복할 수 있는 계약 대상”이라는 서구적 공화주의에 기인한다. 시민들에게 시위는 권력에 실질적인 물리적 충돌을 가함으로써 시민의 무서움을 각인시키는 행위다. 2010년대 후반의 ‘노란 조끼’ 운동부터 최근의 연금 개혁 반대 시위까지, 프랑스의 거리에서 차량 방화와 상점 약탈, 공공기물 파손이 빈번하게 동반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조주의적으로 분석할 때 프랑스에서 국가는 통치 체제일 뿐, 시민 개개인의 내면적 도덕성을 규제하는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의 재산이나 자본주의의 상징을 타격하는 행위는 체제에 대한 정당한 저항권 행사로 합리화되곤 한다. 공권력이라는 외재적 규율이 느슨해지는 순간, 억압받던 개인들이 사적 이익이나 파괴적 본능을 표출하는 일종의 아노미(Anomie)적 해방감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저항은 “타락한 권력을 몰아내고 도덕적인 공동체를 올바르게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목적의식을 공유해 왔다. 그 역사적 정점이 바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다. 당시 광주는 계엄군이 물러간 뒤 완전한 치안 공백 상태에 놓였다. 행정력과 공권력이 마비된 극단의 한복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광주에서는 단 한 건의 절도나 약탈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스스로 치안대를 조직해 도시를 지켰고, 주먹밥을 나누며 금융기관과 상점을 온전히 보존했다. 이는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의 ‘절대공동체’ 모델이었다.

이 경이로운 현상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내재적 규율인 ‘체면(體面)’과 ‘집단적 도덕성’이 발현된 결과다. “우리가 불의에 맞서 싸우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면 우리의 명분이 더러워진다”는 처절한 각성이 사적 이기심을 압도한 것이다. 유교적 민본주의와 두레·품앗이로 대변되는 공동체주의가 현대적 시민의식과 결합하면서, 외재적 공권력이 사라진 자리에 더 강력한 ‘도덕적 정언명령’이 작동했다. 2016년 수백만 명이 모인 광장 시위가 끝난 후, 시민들이 스스로 쓰레기를 주우며 광장을 정화했던 현상 역시 이러한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려는 자발적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인에게 국가는 타도해야 할 절대적 적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르게 바로 세워야 할 삶의 터전이자 운명공동체다. 그렇기에 시위 중에도 무고한 상인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는 대의를 훼손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철저히 배격된다.

오늘날 글로벌 시민사회는 각자도생과 증오 정치, 사회적 신뢰 붕괴라는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의 혁명적 시위문화는 권력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는 강력함이 있지만,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고 구성원 간의 반목을 심화시킨다는 한계를 노출한다. 반면 한국의 광장 문화와 광주 정신은 저항의 과정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인류학적 자산이다.

국가 기능이 정지된 순간에도 동료 시민을 믿고, 약자를 보호하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능력. 그것은 단순한 준법정신의 차원을 넘어선 ‘민주적 연대 의식’의 정수다. 프랑스의 저항이 서구적 개인주의가 도달한 치열한 권리 투쟁의 기록이라면, 한국의 저항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만들어낸 도덕적 승리의 역사다. 광주가 보여준 약탈 없는 저항과 광장이 증명한 평화적 연대는 갈등과 파괴로 점철된 전 세계 저항 문화에 ‘도덕적 자정 능력을 갖춘 시민 역량’이라는 위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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