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⑦] 곽재구의 시 ‘백합’과 일본 영화 ‘화이트 릴리’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2-13 06:24

백합 꽃말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과 순수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내 마음 깊은 골짜기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두 송이 백합

고통스러운 사랑, 비틀린 욕망의 두꺼운 껍질

백합


곽재구


당신이 고통으로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의 방황으로

아름다운 긴 머리칼마저 흐트러뜨릴 때

내 마음의 뜨거운 골짜기에서

진실로 순결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내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찬란한 바다

모든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그날도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하얀색의 ‘백합’ 꽃말은 순결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꽃을 순우리말로 ‘나리’라고 부른다.


변함없는 사랑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연인들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 선물로 주는 일도 많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순결의 상징인 ‘백합’이 여성 동성애, 레즈비언 등을 가리키는 말로 은유되고 있다. 이는 1971년, 일본 남성 동성애 잡지인 장미족(바라조쿠)의 편집장 이토 분가쿠가 여성 동성애자의 투고 코너를 ‘백합족의 방’이라고 명명한 것이 최초의 유래라고 한다. 이때 여성 동성애자를 백합족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백합의 의미가 자기애이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말 나온 김에 ‘백합’을 오브제로 레즈비언의 사랑을 그린 일본 영화 한 편 소개한다.

레즈비언의 사랑을 주제로 만든 영화《화이트 릴리 : 백합》포스터. 

일본 닛카쓰 스튜디오의 ‘로망 포르노’ 탄생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화이트 릴리 : 백합》은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레즈비언의 사랑을 주제로 만든 영화다.


성별을 뛰어넘는 이례적인 사랑을 위해 한 젊은 여인이 인생을 거는 사랑과 욕망, 관능의 열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하루카’(아스카 린)는 어린 시절 오갈 데 없는 자신을 받아준 도예가 ‘토키코’(야마구치 카오리)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녀의 공방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자기 공예가 ‘토키코’와 그녀의 조수 ‘하루카’, 이 두 여성은 태생적인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우연히 서로에게 빠져든다. ‘토키코’는 이전 약혼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남성 편력이 대단히 심한 여성이다. 그녀는 주변 남성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고, ‘하루카’에게도 성적인 요구를 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만, ‘하루카’는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토키코’는 ‘하루카’의 사랑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계속해서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가진다. 그녀는 밤낮으로 많은 남성들을 만나는데 종종 ‘하루카’가 머무는 집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와 머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하루카’는 자신이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는 스승이 함부로 몸과 마음을 낭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영화《화이트 릴리 : 백합》의 한 장면.

어느 날, 공방에 젊은 남성 ‘사토루’(마치 쇼우마)가 새로운 조수로 들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 ‘하루카’는 점차 스승의 비틀린 욕망을 깨닫기 시작한다. ‘하루카’는 ‘토키코’의 아픔을 온몸으로 걱정하는 한편, 스승이 데리고 들어오는 남자를 시샘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이들을 지켜보던 ‘토키코’는 ‘하루카’에게 충격적인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세 사람의 관계가 묘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하루카’는 ‘토키코’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인내와 관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힘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젊고 잘생긴 남자 ‘사토루’가 새로운 조수로 들어오면서부터 이들의 사랑은 점점 뒤틀리며 종속적인 형태로 엇나가버린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백합’이란 소재를 등장시키는 것은 물론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일본 내에서 레즈비언을 은유하는 단어로 백합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1996년 《여우령》으로 데뷔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링》,《링2》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일본 영화계에 호러 영화 붐을 일으켰다. 일본 최고 공포영화의 거장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젊은 시절 로망 포로노의 거장이라 불리는 고누마 마사루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운 바 있다.


그는 과거 조감독으로 현장에서 배웠던 대로 인간의 신체 부위를 탐미적으로 묘사할 때 백합꽃을 이용하는 등 당대 장르 규칙을 재현하는 데 힘썼다.


 《화이트 릴리 : 백합》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두 송이 백합의 고통스러운 사랑에서 시작하여 비틀린 욕망의 두꺼운 껍질을 뚫고 좁은 세상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한 여자의 성장기이자 숭고한 사랑 이야기의 절정을 담은 한 편의 로망 포르노다.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주목받았다.

 영화《화이트 릴리 : 백합》의 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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