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러브호텔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4-19 23:36


러브호텔





우리나라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朴定陽) 일행이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한 것은 1887년 12월28일이었다. 일본 요코하마항을 떠난지 19일만이었다. 그러나 3등 승객중에 두창(痘瘡)을 앓는 이가 있어 곧 하선을 못하고 나흘 뒤인 88년 1월1일에야 상륙을 허가받았다. 그때 투숙한 호텔이 팰리스호텔이다. 박정양이 남긴 기록 ‘죽천고(竹泉稿)’에 따르면 그 호텔은 “높이가 8층에 방이 1,000여개로 남녀 사환이 500명이고 매일 손님이 1,000여명인데 세끼 식사와 하루 숙박비는 상등이 금화 10원, 하등이 3원”이었다고 한다.


우리 외교관 일행이 겪은 ‘문화적 충격’은 처음으로 타보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였다. 조그만 방에 여러 사람을 몰아놓고 조종수가 로프를 잡아 당기자 갑자기 방이 흔들리며 공중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들 놀라서 어떤 이는 주저 앉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지진이 일어났다며 소리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 놀란 우리 대표단은 그 다음날부터는 나막신을 신은 채 계단으로 오르내렸다고 한다.



우리 외교사절이 이처럼 놀란 것은 근대적 시설을 갖춘 호텔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즘과 같은 현대식 호텔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철도시대가 열리면서부터였다. 철도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여행객들이 묵을 숙박시설이 필요했고 거기에서 생겨난 것이 호텔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등장한 대부분의 호텔은 철도회사가 경영했다. 서울에 있는 조선호텔이나 온양관광호텔 등도 처음엔 철도호텔로 문을 열었다.


요즘 말썽이 되고 있는 러브호텔은 자동차시대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숙박업소이다. 숙식을 함께 해결하던 여관에서 숙박만을 제공하는 이른바 장(莊)급 여관시대를 거쳐 지금은 남의 눈을 꺼리는 남녀가 ‘잠깐 쉬었다 가는’ 러브호텔 시대가 되었다. 신도시에 들어선 러브호텔로만은 부족했던지 요즘은 외딴 낙도에까지 들어선다고 한다. 분노한 시민들이 러브호텔에 출입하는 차량번호를 공개하는 등 강경대응을 하고 있지만 번호판 공개가 사생활침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러브호텔이 이처럼 말썽의 대상이 된 것은 들어서서는 안될 데까지 호텔을 짓고 이를 허가해준 관청과 업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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