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죽천행록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5-27 23:53


죽천행록





끝내 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이지만 그의 외교술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다. 당시 만주에서 일어난 누르하치의 세력이 날로 커지면서 명나라를 위협, 중국대륙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명과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던 광해군은 누르하치의 여진족이 마침내 후금이란 나라를 세우자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있었다.


이즈음 후금의 공격을 받은 명의 원병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광해군은 즉각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명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강홍립에게 1만여명의 군사를 주어 보내면서도 “앞장설 것은 없네. 적당히 싸우면서 처신을 잘 해야 하네”라고 간곡한 지시를 내렸다. 광해군의 예상대로 조·명(朝明)연합군은 부차라는 지역에서 후금에게 대패했고 강홍립은 광해군의 명대로 순순히 후금에 투항했다. 명과 후금사이에서 능란한 양면외교를 펼친 것이다.



광해군의 양면외교가 반정파들에게 빌미가 된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반정파가 광해군을 쫓아내는 세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오랑캐인 후금과의 관계가 좋았다는 것인데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친명배금(親明排金)정책을 내세워 죽으나 사나 오로지 명과의 관계유지에만 매달렸다. 후금이 결국 중국을 통일, 청을 건국하면서 두차례의 전란을 겪고 인조의 삼전도 굴복과 세자의 볼모 등 치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명으로부터 인조가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중국사신들이 남긴 한글기록으로는 가장 오래된 죽천행록(竹泉行錄)이 발견됐다고 한다. 죽천 이덕형을 대표로 한 사신들이 인조 즉위를 승인받기 위해 명에 갔다가 쓴 이 기록은 중국관리들의 박대로 길거리로 내쫓기는 등 약소국의 비애가 그대로 담겨 있어 더욱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예나 이제나 외교에서는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미국과 이란 전쟁 문제로 한차례 곤욕을 치른 정부에도 이 행록이야말로 좋은 교과서가 될 듯하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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