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시인학교' 문을 다시 연 직후의 고인 [촬영 백승렬] 2006.6.8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인사동/'바람 부는 섬' 옆에/'시인학교'가 있었다/그곳에서 김종삼의 '시인학교'를/브란덴브르그에 기대어 읽다가/리모델링 바람에 내 마음이 헐리고 허전해서/바람 부는 섬에 와 있다"(이생진 시 '시인학교' 중).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널리 알려진 시인 이생진(1929∼2025)도 즐겨 찾았던 서울 인사동 주점 '시인학교'. 1988년 이곳을 인수해 20년간 시인·소설가·화가 등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운영한 시인 정동용씨가 7일 오후 1시 30분께 일산병원에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8일 전했다. 향년 66세.
196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포항제철공고를 졸업한 뒤 포항제철에서 일하다 시인학교를 인수했다. 1991년에 나온 18인 연작시집 '그대들 사는 세상'에 '모터의 꿈', '안전화' 등 시 5편을 올렸다. 죽기 전까지 꾸준히 공책에 연필로 시를 썼지만, 시집을 내지는 않았다.
시인학교는 시인 김종삼(1921∼1984)의 시 제목이었다. 이 시를 좋아한 이들의 모임('두레') 회원이던 했다. 신경림, 이행자 시인과 현기영 소설가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고인은 시인학교란 옥호 탓에 곧잘 '교장'으로 불렸다. 예술가의 사랑방 역할에 만족했을 뿐 돈 계산은 느슨했던 탓에 경영난에 시달리다 1996년, 2004년에 두차례 문을 닫았다가 시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열곤 했다.
1991년 '그대들 사는 세상'에 실은 시 '손님은 돈'에도 벌써 외상값 얘기가 등장했다.
'시 쓰려고 사 둔 타자용지에/외상내역을 적는다/이름과 날짜와 액수/정확하게 옮겨 적는다/손님은 돈/맨 위에 제목처럼 써놓고/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 올린다/마누라 친구/십년지기 시동인/동인 남편/옆 가게 전 주인/외상 잘하는 단골 선배/싸인 대신 '민중 해방'/글씨도 크고 목소리도 굵던 놈/소식없다/내일은 꼭 전화해야지//당장 갚아야 할 빚의 10분의 1도 안되는/외상장부를 만들어놓고/혼자 술을 마신다/받아야 할 액수 뒤에 동글동글 '0'자 하나씩 붙여보니/그럴듯하다/안심이다.'('손님은 돈' 전문)
장녀 정나래씨는 "(아버지는) 하고 싶은 대로 평생 자유롭게 사셨다"며 "가족들도 그런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나경이씨와 2녀(정나래·정나솔), 사위 정현택·김우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쉴낙원 일산 장례식장 특3호실, 발인 9일 오전 9시, 장지 전남 담양 선영. ☎ 031-923-7000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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