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장소 ㊶] 손택수 시인의 ‘흰둥이 생각’, 가난했던 어린 시절 개에 대한 아픈 정서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8-14 13:14

복날의 복(伏) 자는 사람(人)이 개(犬)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가을 기운에 초복ㆍ중복ㆍ말복이 엎드리고 나면 여름은 지나간다.


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를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다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개는 가축 일호로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고 가장 일찍이 인간의 품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같이 희노애락을 나누며 살고 있다. 애완견에서 이제는 당당히 반려자로 신분이 격상되어 지구상에 그 어떤 동물보다 그 지위와 품위가 당당해졌다.  


개는 인류와 함께 해왔던 동물로서 더불어 사는 애완동물로 여겨져왔지만, 때로는 훌륭한 식재료이기도 했다. 지금은 삼계탕이 복날의 대표음식이지만 옛날의 복날 대표음식은 보신탕이었다. 예로부터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개고기를 즐겨 먹는 풍습은 지혜롭게 여름을 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 쉽게 지치게 되는데 이럴 때 몸 보신용으로 개고기를 먹으면서 체내의 부족한 기운과 잃었던 입맛을 북돋우고 체력과 면역력을 높이기도 하였다.


오늘이 말복이다. 복날의 복(伏) 자는 사람(人)이 개(犬)처럼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복날을 보신탕 먹는 날이라고 농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음양오행에서는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는 날로 본다. 여름의 뜨거운 화기(火氣)에 눌린 가을의 서늘한 금기(金氣)가 초복ㆍ중복ㆍ말복에 엎드리고 나면 여름은 지나간다.


 개고기는 조선시대의 평민들이 자주 먹던 보양식으로 어느 푸줏간에서나 개고기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 먹을 것이 극히 귀했을 때 많이 먹었다.


 게다가 여름처럼 더워서 체력소모가 많은 계절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단백질원이 필요했는데, 소는 농사일에 필요했고, 돼지는 잔칫날에나 잡는 귀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특히 서민들이 고기로 먹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은 개나 닭이었다. 


  특히 탕으로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 개였기 때문에, 개장, 혹은 개장국은 곧 탕을 대신할 정도로 흔하게 쓰였다. 육당 최남선이 저술한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보면 보신탕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쇠고기로 끓인 육개장을 먹으며 여름 무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요즘은 개는 식용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개는 식용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많이 늘어나면서 보신탕의 대체제로 흑염소탕이 각광받고 있다. 개고기를 팔던 식당들이 염소고기로 바뀐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기의 맛도 개고기와 비슷하면서도 호불호를 적게 타기 때문에 가격이 기존의 보신탕보다 훨씬 비싸지만 찾는 사람이 늘어 흑염소탕은 요즘들어 홈쇼핑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는 인기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개에 대한 시 편은 많지만 손택수 시인의 ‘흰둥이 생각’이라는 시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개에 대한 아픈 정서를 소재로 하고 있다. 개고기를 먹든 안 먹든 개에 대한 애련한 정서와 멍울 진 가슴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돈 워리 비 해피



권혁웅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맞았지만

우리 워리, 꼬리만 흔들며

그 매, 몸으로 다 받아냈습니다

한번은 장염에 걸려

누렇고 물큰한 똥을 지 몸만큼 쏟아냈지요

아버지는 약값과 고기 값을 한번에 벌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한성여고 수위를 하는 주인집 아저씨,

수육을 산처럼 쌓아놓고 금강야차처럼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씹을 듯했습니다


2.


누나는 복실이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해피야, 너는 워리처럼 되지 마

세달만에 동생을 쥐약에 넘겨주었으니

우리 해피 두배로 행복해야 옳았지요

하지만 어느날

동네 아저씨들, 장작 몇 개 집어들고는

해피를 뒤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왈왈 짖으며 용감한 우리 해피, 뒷산을 타넘어

내게로 도망왔지요

찾아온 아저씨들, 나일론 끈을 내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해피가 네 말을 잘 들으니

이 끈을 목에 걸어주지 않겠니?

착한 나, 내게 꼬리치는 착한 해피 목에

줄을 걸어줬지요

지금도 내손모가지는 팔뚝에 얌전히 붙어있습니다

내가 여덟살, 해피가 두살 때 얘기입니다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


우리 집에서 개를 키워본 건 초등학교 때로 아주 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걱정하지마 해피’ 하면서 해피를 목줄에 걸어 아저씨들에게 건네주었는데 지금도 내 팔뚝의 손모가지는 얌전히 붙어 있다는 화자는 어릴 때 개가 남긴 아픈 추억이 상처가 되어 가슴 한켠에 옹이로 박혀 있다. 


해피와의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싶은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사정과 죄책감 때문에 해피가 잊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개를 키워본 건 초등학교 때로 아주 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털이 거칠어 만지고 싶지 않았지만, 머리 위에는 유독 부드러워 나는 머리만 쓰다듬었다. 


  이름이 해피였고, 하얀 멍멍이였다. 진돗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귀가 우뚝 서 있고 제법 잘생긴 편이지만 혈통을 알 수 없는 잡중견이었다. 눈은 검다 못해 새까맸다. 샛별처럼 눈이 초롱초롱하고 반짝거렸다. 속눈썹이 길고 쌍꺼풀이 있어 어찌나 이뻤던지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의 애완견처럼 방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개가 아니라 마당가에 묶어놓고 키운 똥개였다.


순하디순한 순둥이 착한 개여서 들로 일하러 지나가는 사람들이 목이 말라 물이라도 마시러 열린 대문으로 들어와 수돗가로 들어와도 짖지도 않고 엄마의 인심을 닮아서인지 펌프질해서 시원하게 마시고 가라는 듯 다리 펴고 편안히 바라만 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다고 아무나 보고 꼬리를 흔드는 그런 지조 없는 개가 아니라 주인의 말에 순종하며 부르면 언제든지 와서 납작 엎드리던 충견이었다.


  개들도 치매나 건망증이 있는 건지 어느 여름날 집을 나간 해피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개장수가 몰래 데리고 갔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개를 잃고 나서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했다. 어릴 때 개가 남긴 아픈 추억이 상처가 되어 가슴 한켠에 옹이로 박혀 있었다. 나중에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듯이 외며 “다 잘될 거야, 행복할 거야”라며 반복하는 바비 맥퍼린의 노래「돈 워리 비 해피」를 듣게 되었는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잃어버린 해피가 더 생각났다.


  권혁웅 시인이 이 노래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시 「돈 워리 비 해피」를 감상하면서 이 노래를 들으면 묘한 합치를 이루는 것 같다.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듯이 외며 다 잘될 거야, 행복할 거라며 반복하는 바비 맥퍼린의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걱정도 근심도 다 사라지는 것만 같다. 아픈 기억도 잊혀지면서 곧 행복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듯한 환상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 때문에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있다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말복을 하루 앞둔 어제 청계천에 발 담그고 탁족을 했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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