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돤 배우 신영균,
명배우의 품격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한국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톱스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시대를 풍미한 배우는 수없이 많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도 후배들의 존경과 대중의 박수를 받는 원로는 흔치 않다.
한국 영화의 산증인 신영균. 그가 백수(白壽)를 맞아 축하와 존경을 받았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꺼리를 던진다. 백수는 아흔 아홉 살을 뜻하는 말이다.
1928년생인 그는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며 한국 영화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인물이다.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영화배우로서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기관리와 성실함, 신중한 처신, 재산을 일구는 지혜, 그리고 사회에 돌려주는 나눔의 정신이 어우러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빛낸 배우
신영균은 1960년 영화 《과부》로 데뷔했다. 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서른두 살에 영화계에 뛰어든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그의 연기 인생은 화려했다. 《연산군》(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2), 《빨간 마후라》(1964), 《물레방아》(1966),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당대의 대표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빨간 마후라》는 강인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준 대표작으로 기억된다. 그는 대종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영화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0여 년간 약 300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은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기록이다. .
그러나 배우의 진정한 가치는 스크린 속 인기에만 있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 빛나던 사람이 무대 밖의 삶에서도 책임과 품위를 지킬 때, 비로소 존경받는 원로로 남는다.
■ 성공한 사업가에게 배우는 돈 관리
신영균의 삶에서 주목할 대목은 배우로서의 성공을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갔다는 점이다.
그는 극장 사업에 뛰어들었고, 1977년 명보극장을 인수했다. 제과점 사업에도 관여하며 사업 기반을 넓혔다. 영화로 얻은 명성과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큰돈을 벌기 위한 모험만 좇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사업 제안이 많았지만 안전한 사업을 택했으며, 빚을 내 무리하게 투자하는 일을 경계했다고 밝혔다. 이는 재산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
돈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관리하며, 어디에 쓸 것인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무리한 욕심을 절제하고 위험을 살피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산을 관리하는 태도는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모든 세대가 새겨볼 만하다.
■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큰 결단
그의 삶에서 더욱 빛나는 대목은 나눔이다.
2010년 신영균은 당시 약 500억 원 규모로 평가된 명보극장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의 재산을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에게 성금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영화의 역사와 미래 인재를 위한 기반을 남기려는 결정이었다.
그의 뜻은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재단은 영화 인재 발굴과 창작 지원, 문화예술인 후원 등을 통해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왔다. 그는 모교인 서울대학교에도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기부했다.
자신이 애써 일구고 가꾼 재산을 다음 세대와 사회를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산에는 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땀과 노력, 가족의 희생, 수많은 선택과 인내가 함께 들어 있다.
그렇기에 사회 환원은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다. 자신이 받은 기회와 사랑을 더 넓은 세상으로 되돌려주는 일이다. 가진 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그의 선택은 보여준다.
■ 품위는 말보다 살아온 태도에서 나온다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인기가 높을수록 말과 행동이 확대되어 해석되고, 사소한 실수도 큰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는 자기관리와 신중한 언행이 더욱 중요하다.
신영균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가 배울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이나 소문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드러난 성취와 선택이다. 그가 오랫동안 영화계의 원로로 활동하고, 자신의 재산을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내놓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평가할 만하다.
품위란 말솜씨나 옷차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 공과 사를 구별하는 자세, 잘못했을 때 책임지는 용기,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후배들이 존경하는 선배는 단지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성공을 독점하지 않고 후배들이 걸어갈 길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 백세 시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제 우리는 오래 사는 시대를 넘어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다. 그러나 장수만으로 인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지키는 자기관리, 분수에 맞는 소비와 현명한 재산관리,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는 언행,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이 함께할 때 노년은 더욱 빛난다.
자기 몸을 돌보는 일은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고, 돈을 관리하는 일은 미래에 대한 준비다. 품위를 지키는 일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며, 나눔은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우리 모두가 신영균 배우처럼 거액을 기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나눔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후배에게 따뜻한 격려 한마디를 건네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도 귀한 사회 환원이다.
백수의 삶을 축하하는 자리는 단순히 아흔아홉 해를 살아온 세월에 박수를 보내는 자리가 아니다.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남겼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자리여야 한다.
신영균 배우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성공은 자신을 빛내는 데서 시작하만,
존경은 그 빛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완성된다.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며, 마지막에는 가족과 이웃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나이 드는 일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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