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수요문학교실 38주년, 네 시인과 독자가 나눈 가을의 시 이야기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10-23 11:21

‘가을에 만나는 네 사람의 시인’ 북토크 성황… 이복희·박상봉 시집 중심으로 문학 대담

류경무·심강우 시인의 작품 비평과 시낭송 이어져… 독자 50여 명 참석

구미시 삼일문고 강연장에서 열린 이복희·박상봉·류경무·심강우가 함께한 ‘가을에 만나는 네 사람의 시인’ 행사

지난 21일 구미시 삼일문고 강연장에서 이복희·박상봉·류경무·심강우 시인과 독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요문학교실 38주년 기념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가을에 만나는 네 사람의 시인’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이승희 국립금오공대 교수의 감성 어린 가을 노래로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세 시간 반을 달려온 시인이자 연기지도자인 김지수 교수는 “두 시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문학적 사유를 넓힐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먼 길을 찾아온 보람을 전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낮은 곳’을 부제로 열린 이번 북토크에서는 이복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바닥을 읽는 사람』(현대시학)과 박상봉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몰개)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 시를 통해 바라본 삶의 풍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진행을 맡은 류경무 시인(오른쪽)과 두 번째 시집『바닥을 읽는 사람』을 펴낸 이복희 시인(사진=삼일문고 제공)

진행을 맡은 류경무 시인은 이복희 시인의 시집을 ‘낮은 곳에 남겨진 존재들에게 건네는 안부’로 해석했다. 그는 “이 시집은 바닥에 남겨진 마음들에게 늦게 건네는 나의 안부다”라는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바닥을 읽는 사람』이 부재와 침묵, 삶의 공백 속에 남겨진 존재들의 흔적을 더듬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돌의 지문」과 「명주달팽이」를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으며, 사물에 담긴 감각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사라진 존재들이 남긴 흔적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대담자로 참여한 심강우 시인은 두 시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공통점으로 생활 서사에 깊은 사유를 끌어들이고 사물의 이면에 숨은 알레고리적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을 들었다.


대담자로 참여한 심강우 시인(왼쪽)이 이복희 시인의 시는 낮은 자리에서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서로 맞닿는 지점을 들여다본다고 평가했다(사진=삼일문고 제공)

심 시인은 박상봉 시인에 대해 “기억을 환기하는 그리움과 상실감을 기조로 현실에 대응하는 극진한 자세가 돋보이는 시인”이라며 “잃어버린 것들을 수반하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의 의미에 천착해 온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상봉 시인의 「내가 아이일 적에」를 치유의 시로 해석하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청춘의 아픔, 삶의 상처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고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자기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집을 거듭할수록 형식과 작법을 새롭게 갱신하며 질적·양적으로 뚜렷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복희 시인에 대해서는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시의 대척점에 있는 생활 서사시”라고 규정했다. 첫 시집보다 언어가 간결해지고 사유가 깊어졌으며 사회적 문제까지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돌이 세탁기」를 분석하면서 세탁기의 반복적인 노동을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에 비유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더러움을 끝없이 씻어내야 하는 세탁기의 운명에서 현대인의 고단한 삶을 발견하고, 정해진 시간과 질서에 갇힌 존재가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읽어냈다.


또 「가면놀이」에서는 생선의 배를 가르자 쏟아져 나온 알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눈알로 바뀌는 장면에 주목하며, 생명의 죽음과 타인의 고통을 자기 성찰로 확장한 시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이복희 시인(가운데)이 “첫 시집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창작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복희 시인은 “첫 시집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나 돌멩이,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삶에 눈길을 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었다”고 창작 배경을 밝혔다.


또 헝가리 여행 중 다뉴브강가에서 만난 신발 조형물을 소재로 쓴 「다뉴브강의 신발들」을 소개하며, 전쟁과 학살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시가 됐다고 말했다.


박상봉 시인은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과 이후 청각장애로 겪어야 했던 삶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듣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문제였다”며 그러한 경험이 세 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와 네 번째 시집『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의 중요한 시적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땅끝(해남)에서 네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기존에 써둔 작품을 퇴고하려던 계획과 달리 새로운 시들이 잇달아 탄생했던 창작 과정도 소개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북토크에서는 두 시인의 오랜 문학적 인연도 화제가 됐다. 박상봉 시인은 한국산업단지공단 근무 시절부터 이복희 시인과 함께 시를 공부했던 인연을 소개하며, 이복희 시인의 첫 시집『오래된 거미집』과 자신의 세 번째 시집『물속에 두고 온 귀』가 모악 시인선 제28권과 제29권으로 나란히 출간된 일화를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경북재능시낭송협회 소속 김미화 낭송가는 박상봉 시집의 표제시「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를 낭송해 깊어가는 가을밤의 서정을 더했다.독자들이 참여하는 시낭송도 이어졌다. 이은숙·최득실·김은경 씨가 이복희 시인의 「바닥을 읽는 사람」, 「돌의 지문」, 「환승」 등을 각각 낭독했으며, 경북재능시낭송협회의 김미화·김옥란 씨와 국립금오공대 경영학과 박사과정 이나연 씨가 박상봉 시인의 「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 「무밭」, 「우리 함께 냉천 갈 때」를 낭송해 깊어가는 가을밤의 서정을 더했다.


1988년 출범한 수요문학교실은 지난 38년 동안 구미 지역에서 시 창작과 작품 합평, 문학적 교류를 이어온 문학 모임이다. 이번 행사는 지역에서 문학적 토대를 다져온 시인들이 독자들과 직접 만나 작품에 담긴 삶의 경험과 시적 사유를 나누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가을에 만나는 네 사람의 시인’ 풍경(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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