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취준생이 만든 온라인 절 인기…개발자 "나처럼 지친 이들 많은 듯"
'힙불교' 현상과도 맞물려…"삶의 고통 얘기하는 불교, 젊은 층에 어필"
온라인 절 '산사' 모습 '산사'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숲속 한가운데 있는 듯 주위가 온통 푸르른 너른 법당에 들어서자 앞에 커다란 불상이 있고, 가운데 동자승을 닮은 캐릭터 위로 '나 : 느린 발걸음'이라는 이름표가 뜬다. 똑같이 생긴 수십 명의 캐릭터들이 합장으로 인사하거나, 바닥에 줄지어 놓인 방석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절을 한다. 메뉴를 클릭하면 염주를 굴리거나 염불을 들을 수도 있다.
최근 며칠 사이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끈 온라인 절 '산사'다.
'산사'를 만든 개발자 박진원(26) 씨는 3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사흘간 60만 명이 다녀갔다"며 "사실 나 혼자 쓸 생각도 하고 만들었는데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얼떨떨해했다.
영문과 졸업 후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박씨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바이브 코딩으로 산사를 만들어 며칠 전 스레드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공개했다. "절에 가서 잠깐 쉬고 싶지만 취준생이라 절까지 갈 시간도, 기운도 없어서" 만든 것이었다.
개발자 박진원 씨의 '산사' 소개 이미지 [박진원 씨 인스타그램(@metamong.dev) 캡처]
'가볍게' 만든 프로그램이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럴 되며 방문객이 빠르게 늘자 앉을 자리가 모자라 '법당 웨이팅'까지 생겨나고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다.
박씨는 처음에 20개만 만들었던 법당 방석을 100개, 1천200개로 늘렸다가 급기야 1만 개까지 늘렸다. 100명씩 들어갈 수 있는 법당 '청연당'이 총 100개가 됐는데도 몰리는 시간엔 그마저도 만원이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다른 불교 국가에서도 '산사'를 찾는다. 박씨는 "밤사이 대만에서 5만 명이 다녀가셨더라"며 "베트남과 태국에서도 많이 들어오신다"고 했다.
서버 비용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자 이용자들의 요청에 따라 추가한 공양미 후원 기능도 순식간에 접속량이 초과해 막히기도 했다.
문과생이 '뚝딱' 만들었을 정도로 크게 복잡한 기능이 없는 '산사'가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박씨가 어린 조카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동자승 캐릭터가 귀여워서, 단순히 색다른 서비스가 재밌어서 이용한다는 반응도 있다. '산사'의 인기 이후 성당과 교회는 물론 낚시터, 사우나, 클럽 등의 메타버스 가상 공간도 줄줄이 생겼다.
무엇보다 '산사'를 통해 실제로 숲속 절을 방문한 듯한 평온함을 느낀다는 이용자들도 다수다. 스레드 상에는 "진짜 고요하고 좋다", "덕분에 방구석에 누워 108배도 하고 힐링한다", "종일 몇 번씩 드나들며 수행한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개신교나 천주교 신자인데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아 들어왔다는 이용자들도 있다.
인파로 붐비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참관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2026.4.2 ryousanta@yna.co.kr
개발자 박씨 역시 불교 신자는 아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절에 간 경험이나 템플스테이 경험 덕분에 절에 늘 좋은 기억이 있다는 박씨는 "불자가 아닌 사람도 너그럽게 품어주는 절의 분위기가 제 또래 친구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시는 걸 보고 저처럼 힘들고 지친 분들이 많구나 생각했다"며 "아무 말 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산사'의 인기가 '힙불교', '불교코어' 등의 용어로 대표되는 불교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삶의 불확실성이 크고 다들 힘들어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불교는 삶이 고통이고, 네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쿨하게 얘기를 해주는 종교라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이어 "사찰 등 종교시설에 갔을 때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나 무언가 성스러운 느낌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에게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불교가 어필이 된다"며 "그렇다고 불교 신자가 되거나 실제로 절에 가진 않고 이런 식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