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칼럼]빌려 입은 세계, 무아의 시선으로_무불 스님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10 13:17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주인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삶의 한 시기 동안 잠시 걸친 외피에 가깝다. 옷이 몸의 본질이 아니듯, 소유와 지위는 존재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그 외피를 자아로 오인한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차지한 자리가 곧 나 자신이라는 착각은 곧 타인의 말에 귀를 닫는 태도로 이어진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 말은 옳고, 남의 말은 들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 순간, 대화는 사라지고 주장만 남는다. 이때 세계는 이해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밀어내는 장이 된다.



불교는 이러한 상태를 아집(我執)¹이라 부른다. 고정된 ‘나’가 실재하며, 그 ‘나’가 판단하고 소유하며 지배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세계를 안정시키기보다 끊임없는 충돌을 낳는다. 변하는 세계를 불변의 자아로 붙들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불교의 근본 통찰이 제법무아(諸法無我)²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독립적이고 고정된 실체를 지니지 않는다. 형태와 의미, 가치와 권위는 조건에 의해 성립되고, 조건이 바뀌면 달라진다.


재물과 권력, 명예와 직위 또한 본질이 아니라 관계의 산물이다. 무아는 허무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기대어 존재한다는 인식이다. 나라고 여겼던 것조차 타인과 시대, 환경과 우연이 빚어낸 결과다. 그러므로 ‘완전히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 확정할 수도 없다.


어젯밤, 많은 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백설로 덮였다. 수십 년 만에 맞이한 깊은 눈이었다. 눈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차이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잠시나마 세계를 고르게 만들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³은 자신을 비하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중심이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인식의 자세다.


아집을 느슨하게 풀어 타인의 말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마음의 상태다. 주인이 되려 애쓰는 삶보다 빌려 입은 존재임을 자각하는 삶이 더 자유롭고, 더 깊다. 눈은 곧 녹지만, 눈이 남긴 고요는 오래 머문다. 우리의 마음도 그러했으면 한다. 백설처럼 조용하고 고운 하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무불 스님



*¹아집(我執):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며, 그 자아가 세계를 소유하고 통제한다고 믿는 마음의 집착.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²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자아가 없다는 가르침. 모든 것은 조건과 관계 속에서 잠시 성립된다.

*³하심(下心):자신을 낮추는 도덕적 겸손이 아니라, 아집을 내려놓고 세계를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인식 태도. 수행과 일상 모두에 적용되는 핵심 개념이다.


무불 박석구 작가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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