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은보배 연탄에 대한 작은 생각_청계 이상석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15 12:13

― 장성탄광 80년의 시간을 지나며



마산 자산동 35년 단골 이발소. 가위 소리와 면도 거품 냄새가 익숙한 그 공간에서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거울 아래 놓인 작은 텔레비전에서는 80년 만에 문을 닫는 장성탄광의 기록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검은 석탄가루가 얼굴에 묻은 광부들, 막장 깊은 곳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갱도를 지키며 곡괭이를 휘두르던 노동, 퇴근 시간까지 안도할 수 없었던 하루. 그리고 한순간의 붕괴로 가장을 잃고 오열하던 아내의 얼굴. 화면은 과장 없이, 그 시절의 질박한 생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연탄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난한 시대를 데워 준 생존의 온기였고, 산업화를 지탱한 검은 동력이었다. ‘검은 보배’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겨울 새벽, 연탄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붉은 불씨는 곧 가족의 하루를 여는 신호였다. 탄광의 막장에서 캐낸 석탄은 도시의 골목으로 옮겨와 밥을 짓고 방을 덥혔다. 광부의 곡괭이질은 곧 누군가의 저녁상이었다.


영상이 끝났지만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발소를 나와 한참을 걸었다. 추산동 언덕배기 골목, 동요 〈꼬부랑 할머니〉의 정서가 깃든 그 동네를 느릿하게 지나며 문득 시간의 결을 더듬게 되었다. 골목마다 연탄재가 쌓이고, 검은 연기가 낮게 깔리던 풍경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연탄재를 차며 놀았고, 어른들은 연탄 한 장을 더 아끼기 위해 불길을 조절했다.


연탄은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연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광부의 위험한 노동, 아내의 기다림, 아이들의 꿈이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버튼 하나로 난방을 켜고, 에너지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 편리함은 커졌지만, 그 뒤에 숨은 얼굴을 상상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라 불렀다.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위험을 누가 감당하는지 우리는 쉽게 잊는다. 과거 탄광의 막장은 위험이 눈에 보이는 공간이었다. 오늘의 위험은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 숨어 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을 뿐, 누군가는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빛을 위해 일하고 있다.



장성탄광의 폐광은 한 산업의 종언이지만, 동시에 한 세대의 헌신에 대한 묵념이다. 검은 석탄가루로 얼룩진 손은 한국 산업화의 밑거름이었다. 우리가 누리는 따뜻함과 밝음은 그들의 어둠 위에 세워졌다.


이발소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연탄은 사라져가지만, 그 불씨가 남긴 온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추산동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오래전 겨울밤 아궁이 속에서 타오르던 붉은 빛을 떠올렸다. 검은 보배는 땅속에서 캐낸 돌덩이가 아니라, 서로를 살게 했던 사람들의 땀과 기다림이었다. 그 불씨를 기억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예의 있게 대하는 방식일 것이다.



청계 이상석 시인, 수필가(창원,마산)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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