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새벽을 여는 겸손한 마음 _청암 배성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2-23 15:31

마산 내서 광려천



병오년 2월 23일 새벽, 마산 내서 광려산에서 이어주는 광려천 산책로의 공기는 아직 차갑다. 밤새 내린 습기가 아스팔트 위에 얇게 내려앉고, 띄엄띄엄 지나가는 차들이 조심스럽게 그 위를 밟는다. 세상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멈춤 없이 다시 시작된다.


새벽은 늘 겸손하다. 자신이 세상을 밝힌다고 떠들지 않는다. 다만 어둠을 밀어내며 조용히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그래서 새벽을 마주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찬란했던 빛도 구름에 가리고, 높던 하늘도 하루아침에 잿빛으로 변한다. 그러나 구름 뒤에 해가 있고, 어둠 끝에 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면 은하수는 강이 되어 흐르고, 그 강물은 말없이 제 길을 간다.


광려천 철새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흔히 겸손을 ‘나를 낮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단순한 낮춤이 아니다. 남의 자리에 서보는 일이다. 상대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말을 줄이는 것도 겸손이다. 불필요한 말은 관계를 무겁게 하지만, 절제된 한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살린다. 눈빛 하나, 고개 숙임 하나에 담긴 진심은 수많은 수사보다 깊다. 비단결 같은 눈빛은 소리 없이도 상대를 존중한다.


문학 또한 겸손에서 시작된다. 문인은 세상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경청하는 사람이다. 자연의 숨결을 듣고,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를 받아 적는 사람이다. 화려한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대신 적어 내려가는 기록자다. 그래서 겸손은 문인의 첫 번째 덕목이다.


꿈만 꾸는 문학은 오래가지 않는다. 현실의 흙을 밟고 걸을 때, 비로소 문장은 생명을 얻는다. 겸손히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길을 찾을 때, 한 편의 글은 개인의 고백을 넘어 시대의 기록이 된다. 그것이 후세에 남을 진정한 역사다.


만약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한 발짝만이라도 상대의 자리로 옮겨서 본다면 어떨까. 나의 옳음보다 이해를 앞세운다면, 말보다 경청을 먼저 한다면, 경쟁보다 배려를 택한다면. 새벽은 매일 다시 열린다.


그러나 마음의 새벽은 스스로 열어야 한다. 겸손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 오늘도 아침이 밝아오는 이 시간, 나는 다시 나를 낮추기보다, 누군가의 자리에 서 보려 한다. 그것이 세상을 밝히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광려천 징금다리

청암 배성근 시와늪문인협회 회장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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