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 복종의 욕망과 배반의 욕망은 언제나 들러붙어 있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4-09 23:28


복종의 욕망과 배반의 욕망은 언제나 들러붙어 있다





어린아이 앞에 놓인 한 알의 얼음을 상상해보자. 아이들은 얼음을 만지려 한다. 손에 쥔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녹는점 때문이다.


물이 뚝뚝 떨어지면 얼음은 처음 생각했던 그 얼음이 아니게 된다. 실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음을 놓으려 하지도 않는다.


시인 앤 카슨은 이것을 인간 욕망에 관한 하나의 은유로 본다. 욕망이 성취되는 순간 상상했던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 그래도 욕망의 감정을 그칠 순 없는 것.


사랑을 비롯한 모든 욕망이 한 알의 얼음 쥐기와 같지 않던가? 책 '에로스, 달콤씁쓸한'은 에로스(eros)에 관한 철학적 사유로 가득하다. 저자는 매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캐나다 작가인데, 이 책은 1980년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에세이로 개작한 것이다. 학술적 이야기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경지가 놀랍다. 제목의 단어 '달콤씁쓸하다'는 그리스 시인 사포가 수천 년 전에 이미 썼다.


"에로스, 사지를 축 늘어지게 하는 그것이 다시 나를 어지럽히네. 달콤씁쓸하고, 물리칠 수 없는, 슬그머니 다가오는 존재인 그것이."


사포의 진단처럼 '에로스'는 단지 사랑, 성애의 감정만은 아니다. 에로스는 달콤하면서(사랑) 동시에 씁쓸한 정서를 형성한다(증오).


인간은 극도로 뭔가를 바라더라도, 결국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모순적으로 마음속에 품는다. 복종의 욕망과 배반의 욕망은 늘 나란하다. 그게 '달콤씁쓸하다'에 관한 카슨의 정의다.


그런데 '달콤씁쓸하다'의 정서는 테이블 위 책을 두고 이뤄지는 의사소통에의 욕망, 즉 독서에도 적용된다. 왜 그런가.


책은 수신인(독자)을 전제 삼은 자아(작가)의 욕망이다.


여기서 에로스가 나타난다.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과정과, 독자가 작가의 책을 중심으로 읽기·읽히기를 욕망하는 과정이 닮아서다.


카슨은 이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은밀한 공모"라고 말한다.


"독자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품은 욕망의 가장자리에 서서 그 경험에 초대된다. 독자가 읽기에서 원하는 것과 연인이 사랑에서 원하는 것은 매우 유사한 모양으로 디자인된 경험이다."


그 과정은 고통이나 증오의 감정과도 유관하다. 타자의 책, 인간의 언어는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욕망하더라도 그 의미는 상상하던 실재가 아니란 얘기다.


욕망은 늘 이처럼 부조화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시인과 소설가는 '은유와 속임수'로 독자를 훔치려 든다. 사랑과 증오가 쌍생아처럼 태어나는 이유다.


따지고 보면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연인에게 다가가면 그는 상상의 실체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머의 실루엣, 환영(幻影)을 쫓고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한다. 어리석은 인간의 오랜 초상이다.

최용대 발행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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