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최유숙 감성 에세이 『아파서 다행이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3-27 13:42

“외로워서 책을 읽고, 외로워서 글을 썼다”

아픔을 견디는 문장, 시간이 빚은 삶을 밝히는 낮은 빛

사소함을 통해 오히려 삶의 중심에 접근하는 감성 에세이

최유숙 지음『아파서 다행이다』

이 책은 거창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작아서 쉽게 지나칠 법한 하루의 결을 붙들고, 그 미세한 떨림을 오래 바라본다. 저자 최유숙의 『아파서 다행이다』는 말 그대로 “어떤 날들의 사사로운 기록”이며, 그 사소함을 통해 오히려 삶의 중심에 접근하는 드문 에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크게 말하지 않는 힘’이다. 저자는 마흔 무렵 대학 문예 창작반에 입문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그 이후의 글쓰기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짚는 일이다. 화려한 서사 대신 반복되는 일상, 사건 대신 감각이 중심을 이룬다.


“내가 나를 증명할 수 없다면?”


주민센터 대기석에서 떠올랐다는 이 질문은『아파서 다행이다』 전체를 여는 문장이자, 이 책의 가장 깊은 문장이다.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 기다리던 순간,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아이러니.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 끝내 한 권의 대답으로 이어진다.


최유숙의 글은 어떤 사건보다도 ‘시간을 통과한 감정’에 집중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외로워서 책을 읽고, 외로워서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이 단순한 문장은 이 책 전체의 문학적 기원을 설명한다. 글쓰기는 표현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었고, 기록은 선택이 아니라 버티기의 형태였다.


서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내가 읽은 누군가의 문장이 나를 살게 했듯, 내가 쓰는 글이 나를 살렸다”는 고백이다. 여기서 글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가 서로를 구원하는 순환 구조를 이루며, 저자의 삶은 그 사이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이 책의 문장은 수식이 없다. 문장은 낮고 짧지만 읽고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자리에서 감성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독자는 문장을 읽기보다, 문장 뒤에 남겨진 시간을 읽게 된다.


구성 또한 흥미롭다.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 「부드러운 바닥」, 「아파서 다행이다」, 「스스로 기뻐하는 높이」로 이어지는 흐름은 외부 세계에서 내면으로, 다시 자신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이어지는 일종의 감정 지도처럼 작동한다. 특히 ‘아파서 다행이다’라는 역설적 제목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시키며 변화시키는 태도를 상징한다.


이규리 시인의 추천사에서 언급된 “참된 고통은 지속하면서 변화한다. 그 변화야말로 그가 신뢰하는 자산일 것이다.”는 말은 이 책을 가장 정확히 요약하는 문장이다. 저자는 아픔을 극복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재구성한다. 이 반복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리듬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소함’에 대한 태도다. 이 책은 크고 특별한 사건 대신 식탁, 방, 엘리베이터 같은 일상의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그 사소함 속에서 오히려 삶의 결이 또렷해진다.


결국 이 책은 “내 인생의 시간으로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저자는 말 대신 글을 내민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고, 다만 기록함으로써 존재를 남긴다.


『아파서 다행이다』는 위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독자의 곁에 앉아,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말을 건다. 아픔을 피하지 말라고, 그 안에서 오래 머물러 보라고. 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삶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되는 것이며, 그 기록이 우리를 대신 말해준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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