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 간도 되찾기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등록 2026-07-20 23:20


간도 되찾기





간도(間島). 현재 옌볜(延邊)이라 불리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동남부 일대로, 한민족의 깊은 한이 서린 곳이다. 간도라는 이름은 청나라가 병자호란 뒤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이곳을 봉금(封禁)함에 따라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공간이 발생, “청나라와 조선 사이의 섬과 같은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청나라는 봉금지역의 남방 한계선을 획정하기 위해 조선과 교섭을 벌여 국경선을 서로는 압록강, 동으론 토문강(土門江)으로 하기로 합의한 뒤 1712년 그 내용을 담은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그런데 이 ‘토문강’이란 문구가 문제였다. 당시 송화강 상류를 지칭한 토문강이냐, 지금 두만강이냐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계비 설치후 160여년간은 시비가 없었으나 19세기 봉금조치 완화로 조선인들의 이주가 시작돼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간도 관할권 문제가 발생했다. 양측은 여러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1887년 4월 함경도 회령에서 벌어진 국경회담에서 조선 대표 이중하(李重河)는 청나라 측이 군대로 위협하면서 타협안을 제시하자 “내 머리는 잘라갈 수 있을 터이지만 우리 국토를 잘라갈 수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말로 거절했다.



구한말의 어지러운 국제정세 속에서도 간도를 지키기 위한 조선의 몸부림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때까지 이어졌다. 일제도 처음엔 간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1909년 9월 일제는 돌연 간도의 관할권을 청나라에 넘겨주고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간도협약을 체결했다. 곧 만주 전체를 지배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어느 언론사가 민간학계와 힘을 합쳐 ‘간도 되찾기 운동’의 기치를 들었다. 공연히 중국을 자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이 있지만 논리의 정합성은 충분하다. 지금 당장 실현은 어렵더라도 먼 훗날을 내다본 선견지명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약탈 움직임과 일본의 줄기찬 독도 넘보기에도 따끔한 말 한마디 못하는 정부이니만큼 민간이라도 나서 140여년전 이중하와 같은 기개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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