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풍경(9)》 ​인因연緣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등록 2026-04-13 07:30

《시조가 있는 풍경(9)》


인因연緣


/ 권오정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길


씨줄 날줄 얽힌 연

세월 속 헐거워져


베바지 

방귀 빠지듯 

술술 빠져 나간다



한 시절 고운 인연 

무지개 탔었는 데


인연도 수명 다해 

달 같이 뜨고 진다


인연들 

떠나 갔어도 

향기는 남았구나


ㅡ ◇ㅡ ◇ㅡ◇ ㅡ◇ ㅡ◇ ㅡ◇ ㅡ 


이 시는 삶의 거대한 화두인 '인연(因緣)''의 생로병사를 아주 담백하면서도 해학적인 시선으로 통찰하고 있다.

해학으로 풀어낸 이별의 미학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베바지 방귀 빠지듯 술술 빠져 나간다"는 표현이다. 자칫 무겁고 슬프게 흐를 수 있는 '인연의 소멸'을 우리네 삶의 냄새가 나는 토속적인 비유로 치환했다. 


이는 인연의 끝이 억지로 붙잡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처럼 그저 순순히 흘러가는 것임을 위트 있게 보여 준다.


씨줄과 날줄, 그리고 헐거워짐


인간관계를 촘촘하게 짜인 옷감(씨줄과 날줄)에 비유한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힘 앞에서 그 어떤 단단한 조직도 결국 '헐거워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진 속 거미줄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들이 곧 떨어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처럼, 시인은 인연의 헐거워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수용의 자세를 취한다.


소멸 뒤에 남는 '고운 향'


무지개처럼 화려했던 시절을 지나 달처럼 저무는 인연의 수명을 이야기하면서도, 시의 마지막은 따뜻한 위로로 끝난다. 인연은 떠나갔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공허함이 아니라 '고운 향기'라는 점이다. 


이는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과정이 결국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향기로운 흔적임을 역설한다.


'향 싼 종이에 향내 난다' 했거늘


전체적으로 이 시는 인연에 연연하기보다, 그 인연이 머물다 간 자리를 긍정하는 성숙한 시인의 시선을 다시 보는 작품 중 하나이다.




권오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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