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영화㉙] 사랑이 메아리 칠때, 헤어질 결심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4-15 22:56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

‘역사적 명작’을 남긴 박찬욱 감독의 ‘뛰어난 역작’

미스테리 서스펜스 두 남녀의 미묘한 사랑 이야기

사랑이 메아리칠 때 

ㅡ영화, ‘헤어질 결심’


장옥관


모래밭을 걷습니다

흑해 연안의 검은 모래밭입니다

당신을 불러봅니다 일구육삼 안다성이 부른 노래,

사랑이 메아리치는 바닷가입니다

못 잊는다고 못 잊는다고

밟을수록 더 희미해지는 목소리

당신이 내 얼굴에 파묻은 사랑입니다

당신이 묻은,

당신을 묻은,

당신의 물음에 내가 답해야 합니다

안개가 발목을 감아 오릅니다

종아리가 지워지고 무릎이 사라지고 허리가 잠기고

아, 당신의 전부가 사라지면

마·침·내 사랑입니다 지울수록 또렷해지는

사랑의 얼굴입니다 어긋난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어나르는 말의 수레와 구어와 문어의

어긋남까지 죄다 사랑입니다 손끝 하나

닿을 수 없는 피안입니다 축축한 메아리가 발바닥을

적십니다 젖어서 번져나가는 사랑입니다

질문 속에서 피는 꽃입니다

헤어질 결심으로 비롯된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죽음이 필요했을까요

저 모래밭엔 얼마나 많은 비밀이 묻혀있을까요

죽음이 탄생인 사랑

감히 영원을 꿈꾸는 사랑입니다 모래밭에 물거품으로

그려진 당신의 얼굴, 사랑의 미궁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랑은 未遂이요

未決이기에 영원한 현재입니다

하염없는 되풀이에 고요한 사랑이 메아리칠 때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

봉인함으로써 비로서 완성된 얼굴입니다

흑해 연안까지 와 닿는 검은 사랑의 얼굴입니다.


박찬욱 감독 영화《헤어질 결심》포스터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평론가들의 떠들썩한 호평을 받은 《헤어질 결심>은 지난 시절 셀 수 없이 많은 ‘역사적 명작’을 남긴 박찬욱의 감독의 작품으로 이 역시 ‘뛰어난 역작’이다. 


영화를 이렇게 잘 만들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화면 속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이 넘치고 벅찬 감동을 받는다.

수사극이라는 미스테리 서스펜스에 두 남녀 주인공 박해일(해준)과 탕웨이(서래)의 미묘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이 영화에는 장면을 전환하는 카메라 워크가 예사롭지 않다.  디자인과 색감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영화 촬영지 선정부터 스크린 속 영화 배경들이 최대한 예술적으로 돋보이도록 세심하게 작업한 그야말로 박찬욱 스타일의 감각이 돋보인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오늘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만한 줄거리를 밝히기보다 그저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을 몇가지만 가볍게 늘어놓고자 한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는 감독이 표현하고자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미쟝센이 많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장면에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메세지를 짜 맞추는 게 곧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는 방식이다. 


미장센은 영화감독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한 화면에 담는 이미지의 구성을 말한다. 화면에 무심히 놓여 있는 소품이나 배우, 지나치는 배경과 조명 세트 등 스크린에서 보이는 모든 요소는, 감독이 표현하고자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 역할을 한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산 같으면서도 바다처럼 보이는 푸른 벽지, 파란색 같으면서도 초록색 같아 보이는 서래가 입은 오묘한 청록색 드레스는 이 영화의 주제인 산과 바다를 상징하는 소품으로 변주된다.


타인의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의미 해석과 시체의 시점, 핸드폰의 시점 등 특정 레이어를 통해 덧대진 화면, 해준의 운동화와 구두, 청록색에서 붉은색으로 수시로 변하는 서래의 옷 색깔, 안개라는 질료 등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미쟝센은 이 외에도 아주 많다.


로맨스 영화의 성공 여부는 남녀 주인공의 배역에 있다. 무엇보다 장해준 형사(박해일 분)의 로맨스 상대로 한국말이 서툰 한국계 중국인 여성 송서래(탕웨이 분)를 설정한 것은 이 영화가 결국 로맨스를 재해석한 영화로 성공하게 만드는 기막힌 배역이 아닌가 싶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두 사람의 대화는 사랑의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연인들의 상징계를 나타낸다. 서래의 한국말은 꽤 수준급이지만 그것을 원어로 쓰는 해준에 비해선 서툴다. 이런 서래를 배려해 해준은 어려운 단어를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해준이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애쓰는 몸짓은 너무나 솔직하고 투명하다. 어려운 단어에 갸웃하는 서래와 그것을 설명해주는 해준 사이의 공기, 뜻을 이해하는 동안 적막 속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던 시간, 이런 것들이 쌓여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자란다.


사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불륜이다. 해준은 아내가 있는 남자지만 불륜에 고뇌하지 않는다. 비윤리적인 욕망에 끌리면서도 그것에 자책하는 시간이 없다. 경찰의 신분으로 피의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범죄 은폐에 적극 가담까지 한다. 그 결정을 내리기 전 심적인 갈등을 하지 않는다. 불륜이란 관계를 맺는 것에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 적극적이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해준과 서래가 그러했듯, 해준의 아내 정안(이정현 분) 역시 남편한테 불륜의 현장을 들키지만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욕망에 뻔뻔한 사람이다. 


어쩌면 아내는 직장 일 때문에 바람을 피우게 된 남편에 대한 보복심리로 젊은 직장 동료를 외도 상대로 선택해 여보란듯 맞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도라는 태풍이 지나간 뒤 부부의 세계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혼을 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갔을까? 그러나 영화는 여기까지. 혹시 2편이 나오면 모르겠지만, 그런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하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해놓고 왜 바람을 피우는 걸까?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요즘은 ‘애인 없는 가정주부가 없다’든지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 오피스 허즈번드(office husband)’ 같은 이야기가 심심치 않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피우는 것 같지만,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해질수록 거의 비슷한 비율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걸 안 후부터 부부는 폭풍우 속에 놓인다. 요즘은 배우자의 휴대전화 속 문자메시지를 봤다든지, 이메일을 봤다든지, 배우자가 사진을 아내 또는 남편에게 실수로 전송한다든지 해서 바람이 대부분 들통 난다. 그럴 때 보통은 ‘용서를 하고, 다시 잘 살아 보자’고 결심하거나, 아니면 헤어지는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단박에 헤어지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아이들은’, ‘경제적인 문제는’, ‘내 사회적인 체면은’. 생각할 것은 더욱 많아지고, 연애나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일수록 헤어지기는 쉽지 않다. 헤어지는 거야 법적으로 하면 되지만, 정작 지옥은 같이 살아 보자고 결정했을 때부터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 부부싸움으로 인한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상대의 외도로 인한 싸움은 서로 용서하고 넘어갔다고 치더라도 마음속에 상처로 남고 잊기도 힘들다. 


내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지옥인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용서를 받았으니 평온하다면, 그 또는 그녀가 전화를 받을 때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마다, 심지어 멋진 식당에 함께 가도 여전히 의심의 태풍이 휘몰아치고 변덕 부리는 날씨처럼 시시때때로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그는 ‘아직도 나를 의심하느냐, 나는 이제 다 정리했다’고 말간 얼굴일 때, 당한 사람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때마다 해명해 주길 바라지만, 상대는 심지어 짜증을 내기도 하고, 그러는 내 모습은 더욱 비참해질 뿐이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영화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부부 문제는 이 정도로 해두고 이제 영화감상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서래가 선택한 해준에 대한 사랑법은 자살로 종결된다. 자살의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간조일 때 모래 해변에 몸이 파묻힐 만큼 바께스로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들어가 만조가 되길 기다린다.


이때 등장하는 바께스는 죽은 고양이를 묻을 때 사용한 것이다. 서래는 왜 삽질을 바께쓰로 할까?


만조가 가득 밀려와 그녀를 완전히 뒤덮고 말았을 때, 이야기상 결말이 내려졌음에도 부가적으로 붙은 것만 같은 긴 엔딩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영화는 파도 속에서 서래를 찾아 헤매는 해준을 제법 오래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데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오고 거친 물살이 해준을 잡아 먹을 듯 강렬한 파고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서래를 찾아 다닌다. 


그의 사랑법은 서래와 다르다. 헤어진다는 건 누군가를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사는 일이다.

 

각본도, 촬영도, 조명도, 미술도, 연기도, 다 너무너무 대단했지만 결국 그걸 묶는 연출적 긴장감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머릿속이 뿌옇다. 이포의 안개, 해준과 서래 사이의 사랑이라는 안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하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 안개는 이 영화의 또 하나 중요한 무대장치이고 주제다.


가수 정훈희 자켓

헤어질 결심 OST ‘정훈희의 안개’ 안무 : 모니카 


https://youtu.be/X5D_K2eGfPk


영화 상영시간이 138분이나 된다. 평균적인 한국영화의 상영시간 보다 20~30분 길다. 긴 것도 그렇지만, 박찬욱의 영화 화법은 생각보다 매우 설명적이다. 정보의 양과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 또한 감독에 필요한 주요 능력 중 하나이다. 박찬욱은 역시나, 이 정도를 잘 조절하고 물 흐르듯 이어 나가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감독을 말하라면 봉준호와 박찬욱을 손꼽는다. 두 감독 모두 훌륭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좀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스토리를 다루고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의 사용 도구도 간결하고 단순하다.

반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대중성도 어느 정도 챙기면서 예술성이 진하고 다양한 상징들이 복잡하게 전개돼 쉽게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영화《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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