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숨 쉬던 작은 공간, 봄의 문턱을 넘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등록 2026-04-19 22:51

마경덕 시인 북콘서트,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 성황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외로움” 때문

외로움이 글쓰기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문장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

책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발견하는 시간 되기를

수원 팔달구 행궁로에 위치한 시집 전문 책방 산아래 詩 다시공방에서 열린 마경덕 시인의 북콘서트(사진=박상봉 기자)지난 4월 17일 오후 5시, 수원 팔달구 행궁로에 위치한 시집 전문 책방 ‘산아래 詩 다시공방’에서 마경덕 시인의 북콘서트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이 열렸다. 공간을 가득 메운 독자와 문인들은 조용히 시적인 에세이의 문장을 따라가며 늦은 봄 저녁의 밀도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눴다.


행사는 「산아래서 詩 누리기」 열 번째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으며, 사회는 정다겸이 맡고 대담은 이복희 시인이 진행했다. 행사 시작 전에는 저자 사인회가 열려 독자들이 시인과 직접 인사를 나누었고, 노란 표지의 시집을 펼쳐든 독자들의 모습이 공간 곳곳에 잔잔한 기대감을 만들었다.


식전 공연으로 마련된 오카리나 연주와 성악 공연은 공간의 공기를 부드럽고 훈훈하게 열어 주었다. 오카리나 연주자 강은순이 ‘모란동백’을 연주하고, 성악가 이인자가 오페라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열창으로 문학적 감수성을 한층 드높이며 시의 정서를 예열했다. 음악이 끝난 자리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여백 위로 작품 낭독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명희 시인이「똥물」을 낭독하고 있다.

낭독 순서는 김영숙 시인이 「아침의 목소리」를, 정윤희 시인은 「바다의 저울」을 낭독하며 작품 속 이미지와 감각의 층위를 청중과 함께 나눴다. 이어 이명희 시인이 「똥물」, 추교희 수필가의 「빈자리」 낭독이 이어지며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문학 세계가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또한 대구의 박상봉 시인과 조영희 시인이 「호두나무 일기」 를 낭독하며 작품의 정서와 사유를 공유했다. 


작품이 낭독되는 시간에는 객석 곳곳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겹쳐졌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문장을 따라갔고, 누군가는 책 위에 시선을 오래 머물렀다. 서로 다른 속도로 읽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리듬 속에 놓여 있는 풍경이었다.


대담에서는 시와 에세이의 경계, 이미지와 감각의 문제, 동시대성과 내면의 거리 등이 주요하게 다루어졌다. 시인은 시가 특정한 형식에 머무르기보다 감각의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말했고,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경험 속 문장들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시가 쓰이는 순간보다 읽히는 순간에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김지수 시인(왼쪽)이 진행한 ‘함께 맞춰보는 시 퀴즈’와 독자 질문 시간이 마련돼 참여형 문학 프로그램의 성격을 더했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김지수 시인이 진행하는 ‘함께 맞춰보는 시 퀴즈’와 독자 질문 시간이 마련돼 참여형 문학 프로그램의 성격을 더했다. 문학적 긴장이 조금 풀린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시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한 줄을 오래 기억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문장의 색을 먼저 떠올린다고 말했다.


책방 한쪽 벽을 채운 시집들의 색채는 마치 또 하나의 시처럼 놓여 있었다. 연한 파랑과 초록, 노랑의 표지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참석자들은 천천히 자리를 정리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몇몇 독자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책장을 다시 넘기거나 시인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대담을 진행한 이복희 시인(왼쪽)과 마경덕 시인(오른쪽)

먼저 마경덕 시인은 이번 에세이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을 통해 삶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결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책은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가의 내면과 기억,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조용히 따라가게 한다. 시인의 첫 에세이집으로, 그동안 축적된 사유와 문장의 결이 응축된 작업을 담았다.


시인은 “봄은 흔히 시작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이 책 속의 봄은 이미 지나온 시간의 그림자를 함께 데리고 온다”고 말하며, 문장 속에 남겨진 여백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북토크에서 마경덕 시인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이렇게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 수원이라는 곳이 멀기도 한데 귀한 시간을 내어 함께해 주셔서 더욱 감사하다.”며 말문을 연 시인은 “시보다 먼저 산문을 쓰기 시작했으며, 산문은 비교적 익숙한 글쓰기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문학 계간지에 5년 동안 매달 원고를 연재하며 산문을 꾸준히 써 온 경험이 이번 책을 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사실 오래전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산문집을 내자고 제안을 받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어 두었다. 원고는 많이 써 두었지만 정리할 시간을 내지 못해 오랫동안 묵혀 두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문득 지금이 책을 낼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시인은 책 제목에 대해 “봄이라는 계절의 상징성과 변화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란색 표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봄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색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강조했다.


“나는 많이 외로웠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는데, 할머니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함께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끄적이며 글을 쓰게 되었다.”면서 “외로울 때 시를 쓰거나 글을 쓴다. 나에게 글쓰기는 외로움의 산물이다. 오히려 행복하고 즐거울 때는 글을 쓰지 못하는 편이다. 외롭다고 느낄 때 문장을 쓰게 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외로움이 글쓰기의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에세이집은 오랜 시간 축적된 기록들을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정리해 출간하게 되었으며, 봄이라는 계절의 감각에 맞추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밝혔다.


마경덕 시인은 “문장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라며, “독자들이 책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북콘서트는 시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가 머무는 자리였다고 할 만하다. 작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문장을 통과했고, 그 통과의 시간이 서로에게 조용한 흔적으로 남았다. 수원 팔달구 행궁로 공방골목에서 열린 시집 전문 책방 ‘산아래 詩’가 마련한 늦은 봄의 저녁은 그렇게 한 권의 시집처럼 천천히 접히고 있었다.



마경덕 시인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그녀의 외로움은 B형』,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등을 통해 사물과 존재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상상인문학상, 모던포엠문학상, 김기림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하며 독창적인 시 세계를 인정받았고, 미래시학문학상, 문학에스프리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어왔다. 현재는 롯데백화점과 AK플라자 문화아카데미, 강남문화원 등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박상봉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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