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할매'와 AI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최근 출간된 황석영 작가의 소설 '할매'의 첫 문장이다. 자연을 묘사한 아름다운 도입부에 흠뻑 빠졌다. 창공을 가로지르던 새는 수명을 다하고 갯벌에 묻혔다. 죽은 새의 몸 안에 있던 씨앗에서 자라난 팽나무가 육백 살 '할매' 나무가 되어 인간의 역사와 어우러진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놀랍도록 확장되었고 인연의 순환을 다룬 웅장한 대서사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할매'는 챗GPT를 '조수'로 활용해 집필한 소설이라고 밝혔다. 깜짝 놀랐다. 뜨겁다. 문단의 거장이 꺼내든 한마디에 인공지능(AI)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그동안 AI가 창작한 문학작품이 등장하고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일자리 위협을 느낀 작가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가와 챗GPT가 친구처럼 소통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곽아람 작가의 '나의 다정한 AI'를 읽었을 때는 새롭고 흥미로웠다.
글을 쓰는 내게도 AI가 바짝 다가왔다. 대다수의 문학 공모전 응모 안내에는 AI를 활용한 작품은 출품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는다. AI를 창작물의 도구로 사용해 더 깊은 사고를 이끌어내고 표현 방법을 확장하는 문학의 시도 한편에서는 두 개의 잣대가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황 작가의 AI 활용 선언은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틈틈이 자료를 구해보기 시작했다. 저작권과 보안 문제,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기계가 창작한 작품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증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며 전문가들 의견에 귀 기울였지만 속 시원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느린 사람조차 AI와 문학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되돌릴 수 없는 흐름 같다.
현실의 문제를 글을 통해 생각해보는 버릇이 있는 나는 이유리 작가의 소설 '크로노스'를 떠올렸다. 엄마는 치매가 심해지기 전, 건강한 데이터를 추출해 메타버스에 담는 작업인 '크로노싱'을 한다. 언니는 크로노싱된 '그것'을 엄마라고 부를 일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것'을 만난 뒤 진짜 엄마와 너무 똑같아 혼란에 빠진다. 반대로 동생은 크로노싱된 엄마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말한다. "엄마는 그게 자기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줬으면 좋겠다고 바랐을 거야. (중략) 언니는 한쪽을 떠올리면 한쪽을 잃는다고, 그래서 결국 둘 다 잃는 것 같다고 했지. 난 그 반대야. 한쪽이 있음으로써 다른 한쪽에게 없는 걸 다시금 떠올릴 수 있고 그래서 난 둘 다 온전히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언니, 그게 사랑이야."
동생의 언어로 어느덧 문학 속으로 깊게 들어온 AI에 대한 내 마음을 대신해본다. 기술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문학의 영역은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은 삶을 비추는 거울, 영혼의 빛을 담는다. 인간이 기술의 주인이 되어 주도적으로 AI를 이끌 때 AI와 문학은 서로를 채워주며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이 흐름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우리가 끊임없이 점검하고 인지할 수만 있다면...
최용대 발행인/ 주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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