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유상종(類類相從)—같은 무리는 서로를 부른다
이 오래된 말은, 자연의 질서이자 인간 사회의 본능을 함께 비추는 거울이다.
들판의 새들이 떼를 이루고, 숲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듯, 사람 또한 비슷한 생각과 취향, 이해관계를 따라 모인다. 문제는 이 ‘모임’이 언제부터 ‘닫힘’으로 변질되느냐에 있다.
유유상종은 본디 나쁜 말이 아니다. 같은 뜻을 품은 이들이 모여 더 큰 선을 이루기도 한다. 학문은 학문끼리, 예술은 예술끼리, 선한 뜻은 선한 뜻끼리 모여 깊이를 더한다. 공동체는 그렇게 결속하고, 문명은 그렇게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 이 사자성어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디지털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듣고 싶은 말만 들려준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서로를 강화하는 ‘확증의 울타리’가 만들어 진다.
그 안에서는 타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비판은 배척되며, 결국 편향은 신념이 된다. 유유상종이 ‘공감의 공동체’가 아니라 ‘배타의 집단’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군자는 예로부터 화이부동(和而不同) 을 지향했다. 어울리되 같아지지 않는 것, 조화를 이루되 획일화되지 않는 태도이다.
이는 유유상종의 폐해를 넘어서는 고전적 해법이다. 같은 무리 속에서도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고, 다른 무리와도 기꺼이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더 절실한 덕목이다.
현대인은 선택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을 보고,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의견에 동의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균형’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 속에서 위안을 얻되, 나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익숙함에 머물지 않고 낯섦을 견디는 용기,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 조건이다.
자연을 보시오. 꽃도 같은 종끼리 피지만, 서로 다른 꽃들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풍경이 된다. 숲은 단일한 나무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양한 생명이 얽혀야 건강해진다.
인간 사회 또한 다르지 않다. 유유상종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처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함께하되 갇히지 말고, 다르되 끊어지지 말라.”
유유상종의 따뜻함을 취하되, 그 울타리를 넘나들 줄 아는 지혜—그것이 급변하는 시대를 건너는 군자와 현대인의 길이라고 본다.
권오정 문화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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