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칼럼]사라진 시간을 다시 세우는 일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기자

등록 2026-06-02 07:21

— 부곡온천과 청암리가 품은 지역의 미래


이미지 캡션 =청암 배성근 



지역이 늙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골목의 기억이 사라지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세월 속에 묻혀가는 일이다. 지금의 지방 도시들이 마주한 위기는 결국 “기억의 소멸”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남 창녕 부곡온천 역시 그런 시간의 경계 앞에 서 있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관광지로 이름을 날렸던 부곡온천은 수많은 사람의 추억 속에 살아 있다. 신혼여행의 설렘이 있었고, 가족여행의 웃음이 있었으며, 뜨거운 유황온천 속에서 삶의 피로를 녹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관광은 더 이상 단순히 숙박하고 온천욕만 즐기는 방식으로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그 지역만이 가진 이야기와 문화, 자연과 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부곡온천 주변에 그런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아직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곡면 청암리는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청암리는 조선시대 뛰어난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도예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흙과 불이 만나 아름다운 생활자기를 빚어내던 곳이며, 이름 없는 도공들의 숨결이 살아 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흔적은 점점 잊혀 가고 있다.

무너진 가마터와 사라진 도예 문화는 우리가 지역의 역사와 삶을 얼마나 쉽게 흘려보내는지를 보여준다.


청암리의 가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광산 개발의 흔적도 남아 있다. 광석이 풍부했던 청암리에는 한때 금광 개발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오래된 흔적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낡은 폐광의 흔적으로만 바라볼지 모른다. 그러나 산업유산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노동과 눈물, 그리고 지역의 시간이 응축된 역사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는 폐광과 산업유산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되살리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버려진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청암리 역시 충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여기에 임해진 나루와 낙동강의 풍경까지 더해진다.


청암리 목뒷산 줄기를 타고 1 km 정도 나가면 낙동강 물길과 임해진 방향과 창원북면. 길곡면. 청암리와 부곡온천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고 한다. 그곳에 전망대와 둘레길이 조성된다면 단순한 관광시설을 넘어 사람들에게 지역의 시간을 바라보게 만드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청암리에 오래된 전설과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떠난 마을에도 이야기는 남는다. 그리고 지역의 미래는 때로 그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지금 지방은 어디나 관광개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비슷한 축제와 비슷한 시설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오래 붙잡을 수 없다. 결국 사람을 머물게 하는 힘은 그 지역만이 가진 고유한 기억과 문화에서 나온다.


부곡온천과 청암리, 우포늪과 임해진 나루, 분청사기 문화와 광산유산, 남이장군기념관, 비봉리페총전시관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창녕은 단순한 온천 도시를 넘어 역사와 생태, 산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깊이 있는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지역을 살린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시간과 기억을 다시 복원하는 일이며, 잊혀진 삶의 흔적을 오늘의 가치로 되살리는 일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개발 논리가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부곡온천과 청암리의 미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시와 늪 대표 배성근(시인, 수필, 소설, 평론(비평). 칼럼리스트)

이원희 보도본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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