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영화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절 하나를 지었다 부수며 살아간다.
유하 감독의 영화《결혼은 미친 짓이다》포스터
그리운 부석사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정호승 시인의 「그리운 부석사」는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더 위험한 시다. 처음에는 절과 불상과 돌과 눈물 같은 것들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조금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 안에 숨겨진 뜨거운 육체와 파멸의 기운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부석사는 단지 절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끝내 버리지 못해 마음속에 매달아 놓은 욕망의 절벽 같은 것이다.
유하 감독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도 그렇다. 2002년 개봉 당시부터 결혼과 사랑을 둘러싼 통념을 정면으로 흔들어 놓은 이 작품은 처음엔 단순한 불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것은 사랑과 제도의 충돌에 관한 영화다. 사랑은 날아가려 하고 결혼은 붙들어 묶으려 한다. 한 사람은 자유를 원하고 또 한 사람은 안정된 일상을 원한다. 그 틈 사이에서 육체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진다.
영화《결혼은 미친 짓이다》한 장면
대학 강사 준영과 조명 디자이너 연희는 사랑하지만 결혼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준영에게 사랑은 현재의 감정이고, 연희에게 결혼은 미래의 안전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제도의 불화가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인간을 소모시키는지 집요하게 보여준다.
정호승의 「그리운 부석사」를 읽다 보면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다. 시인은 사랑을 권유하지 않는다. 기다림을 권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고 말한다. 기다리다가 죽어버리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적당한 온도로 유지되는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걸고 뛰어드는 일이라는 뜻이다.
정호승의 시 속에서 비로자나불은 손가락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아래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상태. 인간은 늘 그런 위태로움 속에서 사랑을 한다. 사랑은 안정이 아니라 추락 직전의 현기증에 더 가까운 감정이다.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이 문장은 거의 저주에 가깝다. 그러나 사랑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랑은 대개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연락 한 통,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하나, 문밖의 인기척 하나에도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몸보다 기다림이 먼저 늙는다.
영화 속 남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를 원하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더욱 탐닉한다. 헤어질 가능성이 사랑의 농도를 짙게 만드는 것이다.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육체를 더 간절하게 만든다.
영화《결혼은 미친 짓이다》한 장면나는 곰곰 생각해본다. 왜 인간은 관계가 무너질수록 더 깊이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아픈 칼질을 피하려고 차라리 뜨거운 체온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헤어짐을 말하는 대신 입술을 포개고, 절망 대신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는 방식으로 시간을 연장하려는 것은 아닐까.
젊은 날 나는 사랑이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은 감정보다 관계가 되었고, 관계는 다시 계산과 습관 속으로 들어갔다. 사랑은 여전히 사랑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관리하고 조절하고 계약하려 들었다.
이게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수록 헤어짐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할 이유는 점점 많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서로의 몸은 더 가까워졌다.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대화 대신 서로의 체온 속으로 숨어들었다. 사랑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랑은 늘 급했다. 지금 아니면 영영 늦어질 것 같은 불안.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할수록 더 격렬하게 서로를 끌어안는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어쩌면 시간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결혼은 같은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선택일까.
영화《결혼은 미친 짓이다》한 장면
영화 속 연희는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이 사랑을 끝내지는 못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을 완성시키지도 못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사랑은 과연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결혼은 과연 사랑의 종착역인가.
사랑은 자주 현실의 문법을 무너뜨린다.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진다. 설명되지 않는 충동과 비합리 속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다운 얼굴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뜨겁게 사랑할수록 관계는 더 빨리 폐허가 되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의 부석사는 그래서 절이 아니라 마음의 폐허처럼 읽힌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혼자 남아 절을 짓고 또 허무는 장소. 그리움은 사라진 사람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끝내 버리지 못한 마음의 습관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제목은 과장이 아니다. 어쩌면 사랑 자체가 이미 일종의 광기다. 인간은 가장 비이성적인 순간에 가장 찬란해진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끝내 타인에게 자기 삶을 내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절 하나를 지었다 부수며 살아간다.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사랑도 그렇다.
무너지리라는 걸 알면서도
끝내 또 다시
허공 위에 절 한 채를 짓는 일이다.

박상봉 사회부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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